새로운 생태경제 모델을 통한 복합위기 대응 전략
목차
1. 기존 GDP 중심 성장모델의 문제점
2. 복합위기 시대 생태사회 전환의 필요성
2.1 기후변화와 자원 한계
2.2 사회적 불평등과 삶의 질 저하
3. 해외 생태사회 전환 사례 비교
3.1 북유럽 생태복지국가의 정책
3.2 독일의 녹색전환 전략
3.3 뉴질랜드의 웰빙 예산과 탈성장 실험
4. 대한민국을 위한 정책 대안
4.1 녹색 일자리 창출
4.2 생태경제 모델 도입
4.3 기후소득(탄소배당) 제도
4.4 VDC/MCC 모델을 통한 시민 참여
5. GDP를 넘어: 국가 정책지표 재설계 방향
6. 결론 및 정책 제언
현행 경제정책은 국내총생산(GDP) 중심의 성장률 지표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습니다. GDP는 한 나라의 일정 기간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합산한 수치로, 경제 규모와 성장 속도를 간편하게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그러나 GDP 중심 성장모델에는 여러 근본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첫째, 경제 외부효과와 삶의 질 요소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GDP는 생산활동의 양적 규모에 치중하여 환경 파괴, 교통 체증, 범죄 증가, 소득 불평등 등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환경적 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가 성장하면서 대기오염과 기후변화를 가속해도 GDP 수치는 오르지만, 그로 인한 건강 악화나 기후 피해는 지표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부정적 외부효과의 누적은 오히려 국민 복지와 장기적 번영을 훼손할 수 있지만, GDP 지표는 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합니다.
둘째, GDP 위주의 성과평가는 소득 분배의 불균형을 간과합니다.
GDP는 한 나라의 총소득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부의 편중과 빈부격차 심화가 있어도 국민 전체가 번영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경제학자들은 “파이가 커진다고 모두가 더 큰 조각을 갖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GDP만으로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즉 다수 국민의 소득이 정체되거나 하락해도, 극소수 상위계층의 소득 급증으로 GDP가 성장하면 경제 성과가 양호한 것으로 착각할 위험이 있습니다.
셋째, GDP 지상주의는 정책 목표의 왜곡과 지속가능성 훼손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GDP 성장률이 정부 성적표로 간주되다 보니, 양적 성장 수치 그 자체가 목적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정책 자원이 환경보호나 사회복지보다 단기 성장 부양에 우선 투입되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나 미래 세대의 이익이 희생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유엔(UN) 역시 2021년 보고서 「우리의 공동 의제」를 통해 “GDP 중심 정책에 대한 불안”을 표명하며 각국 정책결정자들에게 더 다양한 발전 지표를 채택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GDP가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한계를 지적하며, 이제는 지속가능한 번영을 중심에 둔 새로운 지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리하면, GDP 중심 성장모델은 환경과 사회를 간과한 불완전한 나침반입니다. GDP는 여전히 유용한 경제 규모 지표이나, 복합위기 시대에 국민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정책 판단 지표로서 부족함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한계 인식 아래, 세계 각국에서는 “GDP를 넘어(Beyond GDP)”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후위기, 에너지 고갈, 자원 한계가 동시에 표면화되는 복합위기 시대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1℃ 이상 상승했고, 이상기후 현상과 기후 재난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최근 유럽인권재판소는 “정부가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복지를 침해하는 것”이라 판결하여, 국가의 기후행동 의무를 최초로 국제법적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만큼 기후변화는 국민 생존과 안전, 사회경제 전반에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폭우, 가뭄 등의 발생은 농업생태계 변화와 전염병 확산 등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후위기의 긴박함을 감안할 때, 이제 탄소집약적 성장모델에서 저탄소 생태경제 모델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또한 지구생태계의 물리적 한계 역시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지구는 무한한 자원을 제공하지 않으며, 대기·토양이 흡수할 수 있는 오염 부하에도 한계 용량(carrying capacity)이 있습니다. 1972년 로마클럽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는 현재의 자원 소비와 인구증가 추이가 지속될 경우 생태계 붕괴와 성장의 종말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이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지구적 자원고갈과 환경수용능력 한계에 대한 과학적 분석(예: 행성 한계 Planetary Boundaries 개념)이 이어지며 무한성장에 대한 회의를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특히 화석연료 고갈 위험, 핵심 광물자원의 편중 및 고갈 우려는 에너지 안보와 산업 지속성의 관점에서 심각한 도전입니다. 결국 유한한 지구에서의 무한한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며, 자원 순환과 효율 향상을 통한 질적 전환 없이는 현 성장체제가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기후위기와 자원 한계는 기존 GDP성장 위주의 패러다임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기후변화 대응에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이, 자원위기 대응에는 순환경제와 탈성장적 접근이 요구됩니다. 생태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 확보입니다. 지속가능성을 경제 번영의 중심에 놓지 않는 한, 기후위기는 물론 향후 닥칠 수 있는 생태 재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생태적 한계를 존중하는 새로운 경제 모델, 곧 녹색경제 기반의 생태사회 건설이 시급합니다.
생태사회 전환이 필요한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현재의 성장 중심 정책이 국민 삶의 질 향상과 사회적 형평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지적했듯 한국은 1인당 GDP 세계 13위 수준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행복도와 삶의 질 지표는 그만큼 높지 않습니다.
UN 산하 SDSN의 세계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 순위는 57위에 그쳐 경제규모에 비해 국민 행복도가 크게 낮습니다. “세계 11위 국가가 ‘헬조선’이라 불린다”는 자조 섞인 표현이 나올 정도로, 국민들이 느끼는 삶의 질과 공동체의 행복이 GDP 성장에 비례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그 요인 중 하나는 성장 과실의 불평등한 배분과 사회안전망 미흡입니다. 고도성장기 동안 한국사회는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성장률 제고에 힘썼지만, 그 이면에서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은 심화되어 왔습니다. 상위 1%와 나머지 99% 간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GDP가 증가해도 대다수 국민이 그 혜택을 고루 누리지 못한다면 정책 목표로서의 성장률은 무의미합니다.
경제 성장이 일자리의 질 향상이나 실질소득 증대, 복지 향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삶의 만족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또한 GDP 위주의 정책은 복지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합니다. 고령화와 사회구조 변화로 복지 수요는 늘어나는데, GDP 지표는 이러한 복지서비스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으므로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 위험이 있습니다. 예컨대 돌봄 서비스, 교육, 공중보건 같은 분야는 국민 삶의 질에 직결되지만, GDP에는 비용 지출로만 잡힐 뿐 삶의 질 향상 효과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정부가 GDP 성장률에만 집중하면 복지나 환경 등 질적 정책목표는 부차화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선진국들 사이에서 “이제는 GDP 대신 행복지표나 삶의 질 지표로 정책 성과를 삼아야 한다”는 논의가 커지고 있습니다.
결국 생태사회로의 전환은 단순히 환경을 살리는 것뿐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질을 회복하고 사회적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기후위기 대응 투자나 녹색일자리 창출 등은 새로운 분배 정책의 장이 될 수 있고, 지역경제 활성화와 공동체 복원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경제활동의 목적을 “국민 행복과 복지”로 재규정함으로써 성장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생태사회 전환은 기후·환경 위기의 대응책일 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번영과 행복을 이루는 새로운 사회계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유럽 국가들(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은 오래전부터 강한 복지국가 모델과 환경정책을 결합한 생태복지국가를 실현해 온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들 국가는 탄소중립 목표를 선도적으로 수립하고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원칙을 적용하여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보호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핀란드는 2035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면서, 노동조합의 적극적 참여 하에 석탄산업 종사자들의 대규모 재훈련과 고용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였습니다. 이는 기후정책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소득보전과 재취업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탈탄소 경제로의 이행 비용을 사회가 분담하는 모범 사례로 평가됩니다. 한편 덴마크는 풍력 등 녹색산업 기술을 국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여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산업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덴마크 정부는 그린 기술 혁신에 투자하고 기업과 협력하여, 재생에너지 산업 발전과 온실가스 감축을 동시에 달성해왔습니다.
이러한 북유럽의 사례는 “에코 소셜(Eco-social) 정책”, 즉 환경과 사회정책의 통합적 접근의 효과를 보여줍니다. 복지국가의 전통 아래 전 국민 고용보험, 평생교육, 소득지원 등이 잘 갖춰진 북유럽에서는 녹색전환에 따른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완화되므로, 국민적 동의 속에 과감한 기후대책 시행이 가능했습니다. 또한 사회적 대화와 협력 거버넌스를 통해 기업, 노동계, 시민사회가 함께 탄소중립이라는 공동 목표를 추진하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핀란드와 덴마크의 정의로운 전환 추진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역할 분담과 협력 메커니즘을 구축한 것은, 우리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한국도 향후 석탄발전 폐지나 산업전환 시에 이와 같은 노사정 협력 모델과 사회안전망 강화를 병행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북유럽 국가들은 GDP 외에 국민의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 지표를 중시하고 정책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은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매년 상위권을 차지하는데, 이는 단순 경제성과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 복지, 환경 등 전반적인 삶의 질 지표가 높기 때문입니다. 즉 생태복지국가 모델은 경제성장과 사회복지, 환경보호의 조화를 추구하며, 이는 지속가능한 국가 발전모델로서 유용성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독일은 유럽 최대의 산업국가이자 제조업 강국이지만, 지난 수십 년간 친환경 에너지전환(Energiewende)과 환경복지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여 생태사회로의 이행을 모색해 왔습니다. 독일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과감한 탈원전 결정과 함께, 재생에너지 확대 및 에너지 효율 향상 정책을 종합적으로 전개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크게 늘었고, 관련 녹색산업에서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었습니다. 이는 기후대응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또한 독일은 석탄산업 쇠퇴 지역(루르 지방 등)에 대한 공정전환 지원을 통해, 해당 지역의 산업다각화와 재교육, 인프라 투자를 병행함으로써 사회적 충격을 완화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한국의 석탄산업 지역 전환에 참고할 만합니다.
독일은 또 2013년 연방의회 차원에서 ‘경제성장, 복지, 삶의 질에 관한 의회위원회’를 설치하여 GDP에만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국가발전지표 개발을 논의했습니다. 이 엔케테 위원회에서는 환경 지속성, 분배, 삶의 만족도 등을 아우르는 총합적 지표체계를 제안하였고, 이후 일부 지표는 정부 보고서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독일정부는 환경경제계정을 통해 “녹색 GDP” 추계나 탄소생산성 지표 등을 정책평가에 도입했습니다. 이는 GDP 외 대안지표 활용에서 독일이 선도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편 시민사회와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독일에는 다양한 탈성장 및 지속가능사회 실험이 존재합니다. 베를린, 뮌헨 등 도시에서는 탄소중립 도시 계획과 함께 공유경제, 도시농업, 에너지 협동조합 같은 풀뿌리 생태운동이 활발합니다. 특히 프라이부르크시는 태양광·친환경 교통 중심의 그린시티로 유명하고, 시민 주도로 에너지자립마을을 구현한 사례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지역 단위의 생태사회 실천은 중앙정부 정책과 시너지를 일으키며 독일 사회의 인식 전환을 이끌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독일은 산업강국의 위상을 유지하면서도 녹색경제로의 체질 개선을 추구해온 나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대타협, 지표개혁, 지역 참여 등을 통해 거대한 전환을 실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한국도 탄소중립기본법 시행 등 제도적 틀이 마련된 만큼, 이제는 독일처럼 체계적 로드맵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에너지·산업 전환을 가속해야 할 것입니다.
뉴질랜드는 최근 주목받는 “웰빙 예산(Wellbeing Budget)”을 최초로 도입한 국가로, GDP를 넘어서 국민 삶의 질 증진을 국가정책의 중심에 놓은 사례입니다. 저신다 아던 전 총리 정부는 2019년 예산부터 정신건강, 아동복지, 마오리·태평양 주민 생활향상, 디지털 미래 대비, 저탄소 전환 등 5대 웰빙 우선순위에 재원을 집중하는 혁신을 단행했습니다. 뉴질랜드 재무부는 정책을 기획·평가할 때 전통적인 GDP 영향뿐 아니라 사회·환경적 영향을 함께 고려하도록 지침을 바꾸었습니다. 예컨대 새로운 투자나 법안을 검토할 때 “이 조치가 국민 정신건강에 미치는 효과는?”, “지역공동체 유대에 영향은?” 등을 묻도록 한 것입니다. 아던 총리는 “우리 정부 예산은 더 이상 경제 지표만의 잣대로 편성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전반적 웰빙을 보여주는 지표로 짜여질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세계 최초로 예산 편성의 패러다임을 바꾼 실험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웰빙 지향 정책 덕분에 뉴질랜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사이에서 포용적 성장 및 삶의 질 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의 사례는 국가정책 목표를 GDP가 아닌 국민 총행복으로 재설정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그 이전까지 국민총행복지수(GNH)를 정책에 반영한 나라는 부탄 정도였는데, 뉴질랜드가 선진국 가운데 처음으로 정부 차원에서 탈GDP 지표를 적용한 것입니다. 이후 스코틀랜드, 아이슬란드, 웨일스 등도 뉴질랜드와 함께 웰빙경제정부연대(WEGo)를 결성하여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상호 경험을 공유하며 탈성장에 기반한 지속가능발전 전략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한편 탈성장(de-growth) 개념 자체를 국가 정책에 실험적으로 반영하는 곳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스 일부 도시 등 지방정부 차원에서 경제성장률 목표 대신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 자립, 노동시간 단축 등을 핵심지표로 삼는 사례가 있습니다. 또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도넛경제학 모델을 시정운영에 도입하여, 도시의 경제활동이 한편으로는 시민의 기본적 사회적 기반을 충족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 환경용량의 초과를 막는 균형(doughnut) 지표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탈성장 실험들은 아직 국가 단위의 주류정책은 아니지만,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근본 원인을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일부 학자와 시민운동가들은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부유한 선진국이 경제성장의 집착을 버리고 질적 발전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국제 담론으로서 탈성장 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와 기타 국가들의 사례는 대안적 지표 도입과 정책실험이 현실 가능함을 보여주고, 정책 우선순위를 국민 삶의 질에 맞출 때 거시경제 성과도 중장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해외의 모범사례를 참고하여 GDP 일변도의 정책틀을 개선하고, 복합위기에 부합하는 새로운 지표와 예산 편성 기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문제의식과 해외 사례를 토대로, 대한민국이 생태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채택할 수 있는 핵심 정책 대안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녹색 일자리(Green Jobs)란 “환경의 질 개선이나 회복에 기여하는 모든 산업의 일자리”를 의미하며, 에너지, 건설, 농업, 제조업, 서비스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창출될 수 있습니다. UNEP 등 국제기구는 녹색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과 빈곤 감소에 크게 기여하며, 이미 전 세계에 수백만 개의 녹색일자리가 존재하고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후위기 대응을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 및 운영, 건물 에너지 효율화(그린 리모델링), 대중교통 및 전기차 인프라 확충, 산림복원 및 도시녹화 사업, 자원재활용 산업 등은 모두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분야입니다. 정부는 그린뉴딜 정책 등을 통해 녹색 일자리 창출을 지원해왔으나, 보다 체계적인 인력양성과 지역밀착형 일자리 발굴이 필요합니다. 특히 지역경제 차원에서 에너지전환 협동조합, 마을단위 순환경제 사업 등을 육성하면 지역 주민의 고용과 소득을 창출하면서 저탄소 전환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녹색 일자리는 단순한 새로운 직업 창출을 넘어, 노동의 의미를 지속가능성에 부여하고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를 확대하는 사회정책이기도 합니다. 향후 한국판 녹색일자리 정책은 교육·훈련, 금융지원, 세제혜택 등을 패키지로 마련하여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인력 전환계획과 연계해야 할 것입니다.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란 “자원의 사용과 폐기물을 최소화하고, 제품과 자원을 최대한 순환시키는 경제시스템”을 말합니다. 이는 기존의 선형경제(Linear Economy) – 자원 채취 → 생산 → 소비 → 폐기
– 모델에서 탈피하여, 자원 효율 극대화와 폐기물 제로(Zero Waste)를 목표로 합니다.
대한민국은 자원빈국이자 폐기물 다량배출 국가이므로, 순환경제 전환이 시급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제조업의 생산 공정부터 재활용과 재사용을 염두에 둔 에코디자인을 장려해야 합니다. 또한 제품의 수리 가능성 향상, 공유 플랫폼 활성화, 업사이클링 산업 지원 등을 통해 제품의 수명 연장과 재사용 시장을 키워야 합니다. 정부는 이미 자원순환기본법을 제정하고 일부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를 운영 중이지만, 아직 순환경제 달성 수준은 미흡합니다.
EU의 순환경제 액션플랜처럼 국가 차원의 종합 추진전략과 부문별 순환경제 목표치 설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2025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60% 재활용, 2030년까지 건설폐기물 자원화 90% 달성 등의 구체적 목표를 세우고 이행을 점검해야 합니다. 순환경제는 쓰레기 처리 문제와 해양오염을 줄이는 환경적 이득뿐만 아니라, 재활용 산업 및 수리산업 활성화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습니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광물 자원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는 추세에서, 국내에서 자원 순환률을 높이는 것은 경제안보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한국형 순환경제 전환은 제조업 경쟁력 강화와 지역사회 참여를 함께 도모하면서 추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기업의 녹색혁신 투자 지원, 시민의 분리배출·재사용 문화 확산 등의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기후소득은 *“탄소세 등 기후대응 정책으로 확보한 재원을 국민들에게 균등하게 환원하는 것”*을 의미하며, 탄소배당 또는 기후배당이라고도 불립니다. 이는 탄소가격제(탄소세나 탄소배출권 거래 등)를 도입하여 온실가스 배출에 비용을 물리되, 거둬들인 재원을 정부가 임의로 쓰지 않고 전 국민에게 1인당 동일 금액으로 지급함으로써 기후정책의 수용성을 높이는 방안입니다. 예를 들어 탄소세 도입으로 에너지 가격이 인상되어도, 정부가 그 세수를 국민에게 기후소득 수당으로 돌려주면 저소득층도 부담을 상쇄하거나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스위스, 캐나다 일부 지역 등에서 유사한 탄소세 환급제를 운영 중이며, EU도 탄소국경세 수입의 일부를 회원국 시민에게 배당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후위기시민회의 등에서 기후소득 제도를 제안한 바 있고,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소규모 시범사업을 시행했습니다. 대표적으로 경기도는 「기후행동 기회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도민이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행동(예: 대중교통 이용, 에너지 절약, 나무심기 등)을 하면 연간 최대 6만 원까지 지역화폐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시민들의 친환경 행동에 금전적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저탄소 생활양식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향후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보다 포괄적인 기후소득 제도를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탄소세 또는 배출권 경매수익의 일정 부분을 재원으로 하여, 성인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기후배당금을 지급하면,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지지를 높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에너지 가격 인상 등 정책 충격으로부터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복지적 효과도 기대됩니다. 중요한 것은 기후소득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수단이며, 탄소가격 인상 자체가 궁극적으로 화석연료 소비 감소로 이어지도록 배당 수준과 세율 간 균형을 잡는 것입니다. 한국은 이미 기후대응기금 등을 운용하고 있으므로, 이를 국민 기후배당 형태로 설계하는 방안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 정책뿐 아니라 시민과 기업의 자발적 기후행동을 유도하는 혁신적인 수단으로 VDC/MCC 모델을 도입할 것을 제안합니다. 여기서 VDC란 *“자발적 감축목표 (Voluntary Determined Contribution)”*의 약자로, 지자체·기업·개인이 자율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하는 체계를 말합니다.
MCC는“Mini Carbon Credit”의 약자로, 조각탄소 크레디트 즉 소규모 탄소감축 실적에 대해 부여하는 탄소크레딧을 의미합니다. 이 모델은 예컨대 한 개인이 일상에서 자전거 통근이나 태양광 설치로 1톤의 CO₂를 감축하면, 디지털 검증을 거쳐 1톤에 해당하는 탄소크레디트를 발급해주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소량으로 쪼개진 MCC를 시민들이 보유하거나 거래할 수 있게 함으로써, 탄소감축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부여합니다.
현재 국내 SDX재단 등이 이 개념을 발전시켜 조각탄소 이니셔티브(MCI)를 추진하고 있는데,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소규모 감축 활동도 정확히 측정·인증하고, 신뢰성 있는 크레디트로 전환하는 시스템을 구축 중입니다. 이미 몇몇 지자체 등에서 VDC 체계를 검토하고 실무팀을 꾸리는 등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VDC/MCC 모델의 장점은
첫째, 자발성에 기반한 탄소시장을 형성하여 시민 참여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법적 감축목표(NDC)와 별개로, 기업이나 개인이 스스로 설정한 VDC를 달성하면 명예와 경제적 보상을 동시에 얻게 되어 동기부여가 큽니다.
둘째, 디지털 투명성으로 감축 실적을 관리하므로 탄소저감 활동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작은 감축 활동은 측정·검증이 어려워 탄소시장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MCC 시스템을 통해 이를 포괄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이렇게 축적된 시민 탄소감축량 데이터는 향후 정부 정책 수립에도 활용 가능한 빅데이터 자산이 됩니다. 예컨대 어느 지역에 어떤 감축 행동이 활발한지, 추가 지원이 필요한지 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민간의 이러한 혁신을 지원하여 공식 탄소감축체계의 보완재로 삼아야 합니다. 자발적 탄소시장(VCM)의 무결성을 높이고 국제적 승인(예: 탄소상쇄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표준을 마련할 필요도 있습니다. VDC/MCC 모델이 정착되면, 탄소중립이 정부 규제나 비용부담의 프레임이 아니라 시민 참여형 가치 창출 활동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문화적 전환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국가 정책목표와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 체계를 GDP 일변도에서 다원화하는 방안을 논의합니다. 앞서 지적한 대로 GDP는 경제활동의 양적 규모를 보여줄 뿐, 국민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 여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제적으로 “Beyond GDP” 흐름이 본격화되었고, 우리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여 국가 정책지표의 재설계를 추진해야 합니다.
첫째, 복수의 대안지표들을 통합한 dashboard형 지표체계 구축을 검토합니다. 하나의 숫자로 모든 것을 대체하기보다는, 경제적 번영, 사회적 포용, 환경 지속성, 삶의 만족 등의 영역별 핵심지표를 선정하고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OECD의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지표, 사회발전지수(SPI), 지속가능한 경제복지지수(ISEW) 등의 구성요소를 참고하여 한국형 지표체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회발전지수(SPI)는 영양·보건, 안전, 자유, 환경 등 다양한 사회적 성과를 평가하고, ISEW는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나 환경오염에 따른 손실비용을 GDP에 가감하여 지속가능한 복지를 측정합니다. 이러한 지표들은 GDP가 놓치는 부분을 보완해주며, 매년 추이를 발표하여 국민에게 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성장률이 아닌 행복과 지속가능성임을 인식시킬 수 있습니다.
둘째, 국가 통계 시스템의 개편이 필요합니다. 통계청 등은 이미 “포용국가 지표”, “국민 삶의 질 지표” 등을 개발해왔지만 정책의사결정에 영향은 미미했습니다. 앞으로는 대안지표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거나 정부 성과평가에 반영하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예컨대 국가재정법 개정을 통해 정부 예산편성시 환경영향과 분배영향을 점수화해 보고하도록 의무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등에 GDP 이외 지표 목표치를 명시하고 관리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처럼 아예 예산편성 틀을 웰빙지표로 바꾸는 혁신은 가장 선진적인 예이며, 한국도 장기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습니다.
셋째, 국민소통과 교육을 병행해야 합니다. GDP에 익숙한 정책담당자와 국민들에게 새로운 지표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버트 F. 케네디는 일찍이 “GDP는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모든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측정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일화처럼 GDP의 한계를 알리고 행복, 공동체, 환경의 가치를 재인식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이 정부의 성공을 경제성장률이 아닌 삶의 질 향상으로 판단하도록 인식 전환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요약하면, 향후 국가정책 지표는 하나의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다차원적인 성과를 반영하도록 바뀌어야 합니다. 경제, 사회, 환경이 통합된 지표체계는 복합위기 시대에 정책의 균형감을 유지하게 해주며, 국회를 비롯한 정책입안자들이 보다 책임있고 미래지향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이상에서 GDP 중심 성장모델의 한계를 분석하고, 복합위기 대응을 위한 생태사회 전환의 필요성을 논증하였습니다. 현 정책패러다임 아래에서는 기후위기, 자원고갈, 사회양극화, 삶의 질 저하 등 다면적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녹색경제를 핵심으로 한 생태사회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1. 정책목표의 재정립: 이제 성장률 자체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번영과 국민의 삶의 질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국회와 정부는 GDP 외에도 대안적 복지·환경 지표를 공식 성과평가지표로 채택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합니다.
2. 통합적 전략 수립: 경제·산업 정책과 사회·환경 정책을 분리하지 말고, 기후위기 대응계획, 에너지전환 로드맵, 불평등 완화대책 등을 연계한 국가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를 뒷받침할 거버넌스로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거나, 국회 내 초당적 기구를 운영하는 것을 제언합니다.
3. 녹색투자와 지원 확대: 녹색 일자리와 순환경제를 촉진하기 위해 재정 투자와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해야 합니다. 탄소중립 예산 편성 지침을 강화하고, 기후대응기금을 적극 활용하여 정의로운 전환 지원, 친환경 기술혁신, 지역 그린프로젝트 등에 재원을 투입해야 합니다.
4. 사회적 대화 및 교육: 생태사회 전환은 광범위한 사회 변화를 수반하므로 국민적 이해와 지지가 필수입니다. 따라서 노사정 대타협을 위한 기구를 활용하여 전환 과정의 부담 분담을 논의하고, 시민 대상으로는 기후·환경 교육과 홍보 캠페인을 강화하여 문화적 전환을 유도해야 합니다.
5. 시범사업 및 지역모델: 기후소득, VDC/MCC 모델 등 새로운 정책 수단은 우선 지자체 단위 시범사업을 통해 효과를 검증한 뒤 전국으로 확산해야 합니다. 또한 에너지자립마을, 생태교통 도시 등 지역 주도의 성공모델을 발굴해 전국화하면, 아래로부터의 전환 동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국회는 이러한 생태사회 전환을 입법적으로 뒷받침할 책무가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법·제도 정비와 재원 배분, 감시 역할을 충실히 하여, 대한민국이 GDP 성장 신화 이후 새로운 발전모델을 개척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복합위기에 맞선 생태사회로의 대전환은 어려운 과제지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유일한 길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국가 역량을 모아나가야 합니다. 국회를 주요 독자로 하는 본 보고서의 분석과 제언이 향후 입법과 정책 토론에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
주요 출처:
경제성장률 중심 지표의 한계: 이용성, 「GDP 집착으로 우리가 치러야 할 커다란 대가」, 이코노미조선(2025)
생태사회 전환 국제동향: 김경학, 「‘저성장 시대, 행복지수 등 대안지표 논의 활발’」, 경향신문(2023)
북유럽 정의로운 전환 사례: 황남희, 「북유럽의 기후변화 대응 동향: 핀란드와 덴마크의 정의로운 전환」, 보건사회연구원(2024)
뉴질랜드 웰빙 예산: Green Economy Coalition, “New Zealand goes beyond GDP” (2018)
VDC/MCC 모델 설명: SDX재단, 자발적감축목표(VDC) 및 조각탄소 이니셔티브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