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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진 Dec 19. 2017

일이란 무엇인가?

통깨미잡)  통념을 깨고 미래를 잡자.


4차 산업혁명은 일의 개념, 교육의 개념, 삶의 개념 등 우리 일상의 모든 통념이 방해가 되는 세상이다.

통깨미잡 1편으로 일에 대한 통념을 깨 보고자 한다.


일은 과연 무엇인가?


사람은 일 할 때만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고 그 일이 생산적이거나 의미 있을 때 그것을 견딜 수 있다.(Langdon, 1966) 일이라는 것은 그것이 경제적이던, 사회적 목적이던, 소명이던 간에 행복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경제적 이유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일에 의미를 높게 평가하면 할수록 생산성도 높아지고 행복감도 높아진다. 일의 목적과 중요성을 이해하면 더 깊게 몰입하고, 심리적 만족감으로 더 생산적이 된다.(Albrecht, 2013).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어도 일을 계속 하겠다는 대학생 대상의 연구결과를 보면 일이라는 것이 성장 등의 욕구 충족, 기술습득, 신체·정신적 건강, 사회에 대한 기여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Dhar, 2013)


흔히들 일은 삶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어떤 이는 일이 곧 삶인 사람들도 있다.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은 사람들을 우리는 '자아실현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술가들이나 스포츠를 하는 자들은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 일을 통해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은 삶의 수단이며 일을 통해 수입을 얻고 그것으로 삶을 즐기려고 한다.

문제는 그 수입을 위한 일에 시간을 거의 소비하게 되어 진정한 삶을 누릴 기회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열심히 일을 하는데 그것이 자아실현의 과정이 아닌 경우가 많은 것이다.


어떤 이는 요리를 하면서 삶을 느끼지만 어떤 이는 요리가 돈을 버는 수단에 불과하다.

어떤 이는 청소를 하면서 삶을 느끼지만 어떤 이는 청소를 하면서 생존을 걱정한다.


켄 로빈스 교수는 타고난 재능이 열정을 만나는 지점을 엘리먼트(Element)라고 정의하였는데 이 상태가 되면 몇 시간이 몇 분처럼 흘러버리고, 오직 그 일에 몰입하게 되며, 에너지가 솟아나고 자신을 행운아라 여기며 자신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느끼며, 자기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엘리먼트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하였다.


과연 우리는 일을 통해서 이와 같은 엘리먼트를 경험하고 있는가?


일이 삶 그 자체가 되어야


삶의 수단으로서의 일은 앞으로 갈수록 기계들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그 이유는 일자리에 대한 인간의 욕구수준이 높아질수록 그 욕구를 충족하기 보다는

말 잘 듣고 생산성도 훨씬 뛰어난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계에 의한 일자리 상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간의 욕구수준이 높아지는 만큼 그것을 대체하려는 노력도 계속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인간의 지능을 대신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이 우리에게 공포스러운 것이다. 이미 법률자문을 해주는 인공지능은 물론, 파일럿을 대시하는 로봇 등 고도의 지적수준을 요구하는 일들 마저도 인공지능이 넘보는 상태이며, 인간이 기피하는 일들도 기계의 몫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일은 삶의 수단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일을 고된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아니면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또는 평생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즐겁게 놀았다고 이야기하는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처럼 놀이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소명과 놀이로 자아실현을 하는 자들은 인간으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는데 바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반면에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기계들과 일자리를 놓고 다퉈야 하는 힘겨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아실현은 자발적 동기에 의해 스스로 행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며 그 방법은 개별적이고 그 목적은 내재화되어야 한다. 목적을 내재화한다는 것은 스스로 창조한 무언가를 개념화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가운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내재화된 삶의 목적을 추구하는 경우 외적인 조건은 무의미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요리, 농사, 공작, 고행 등 기존의 단순하고 평범한 일들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자아실현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로봇이 하는 일과 자아실현의 과정이 대비될 수 있는 것이다.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두 가지 필요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첫째는 기초생활의 안정이다. 매슬로우의 욕구5단계 중 최소한 생존욕구와 안전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아실현 욕구의 구현은 쉽지 않다. 통념과는 달리 기초생활만은 안정시키는 일은 갈수록 부담이 줄어들고 있다. 두 번째로는 충분한 시간을 자아실현을 위해 투자하며 삶을 디자인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되묻고 떠오른 무언가를 개념화하고 개념화된 목적을 추구하며 엘리먼트를 경험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바로 자아실현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하여 기초생활을 안정시킨 후에 충분한 시간을 자아실현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겠다.


4차 산업혁명은 한계비용을 줄여주고 있고 기계에 의해 불필요한 노동을 인간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얻게 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아이들에게 심어주면서 동일한 지식을 주입하여 부품처럼 살도록 강요하는 부모들이나 학교 그리고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심각한 배임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 봐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닥칠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부모세대와의 견해차이는 아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자 이제 우리들의 삶은 자아실현인이 되어야 하는 상황임을 인식하고 기계들과 함께 하는 대열에서 과감히 뛰쳐 나와야 한다. 우리가 하던 일을 기계에게 맡기고 우리는 진정으로 자아실현인으로서의 삶을 향해 떨쳐 나아가야 한다.


일이 삶의 수단이라는 통념을 깨지 못하고 기존의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을 펴고 있는 정부는 쓸데없는 예산을 새로운 개념 정립과 함께 제대로 써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초생활을 여하히 안정시킬 것인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하며 자아실현사회를 만들기 위한 각종 사회인프라 건설에 나서야 한다. 교육, 주거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자아실현을 위한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지금의 정규직 확대와 같은 일자리 창출 정책은 아마도 머지 않아 무의미한 정책이 될 것이고 예산 낭비에 따른 따가운 질책을 받게 될 것이다.


통념을 깨지 아니면 미래를 잡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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