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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진 May 04. 2020

After Crisis #16 이제 뭘 하지?

   요즘 들어 누구에게나 자주 떠오르는 질문이 ‘이제 뭘 하지?’가 아닐까 싶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대체 뭘 해서 먹고 살아야지? 라는 걱정스러운 질문을 반복 할 테고, 설사 직업이 있다 하더라고 불안한 경제적 상황 때문에 걱정이 앞설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최고의 직업이라던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은 물론이고 정년까지 보장을 받고 있는 교사나 공무원들조차도 이대로 가면 과연 정년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그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이런 거대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펜데믹은 이 변화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다가올 미래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활약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자율주행차인데 이 기술은 비단 운전자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1년에 20만 건이 넘는 사고에 따른 수리비용 및 35만 명에 달하는 부상자들의 의료비용을 감소시켜 정비업소나 병원에도 영향을 주고 보험업계나 자동차 부품산업 그리고 변호사들도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뒤덮으면 인간에게 아예 운전을 금지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교통사고의 대부분은 인간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이 될 모습이다. 이는 비단 한 분야의 예이지만 사회 전반에 이런 형태로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면 과연 인간을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게 된다.


   이렇듯 다가올 미래가 분명한데도 우리 사회의 대비는 여전히 미온적인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100년도 넘게 큰 변화 없이 이어지는 교육제도를 유지한 채 미래의 인재를 육성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우리 아이들에게 큰 죄를 범하는 것과 같다. 지금 초등학생이 20년 뒤에 만날 사회를 상상해 보라. 불과 10여 년 전에 탄생한 스마트폰이 이제는 우리 몸에 일부분이 되었다며 포노사피엔스라는 신인류로 분류하는 상황이다. 


   스마트폰이 나온 10여 년 전에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니 지금 20년 후를 상상하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의 역할은 아주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는 점이다. 즉 삶의 방식이 상당히 달라지고 지금과는 많이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여전히 과거의 삶의 방식을 주입하고 있는 이 사회와 부모들과 국가는 과연 제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 한 가지 분명하게 달라지는 점은 자유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은 인간에게 더 많은 시간을 되돌려 주었다. 불과 3, 40년 전만 하더라도 1년에 하루 정도의 휴가가 주어졌을 뿐이다. 주말, 공휴일 할 것 없이 그저 출근하면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일주일에 이틀을 꼬박 쉬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앞으로 10년 후면 쉬는 날이 이틀이 아니라 4일, 5일 정도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갈수록 늘어나는 이 자유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이것이 바로 미래사회의 핵심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일상이 멈춰버린 이번 펜데믹은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시간을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너무나 감사하게 이 시간을 활용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지구촌 모두에게 수동적인 삶과 능동적인 삶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엄청난 교육의 기회를 자연이 제공해 준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인간 사회는 세상이 멈춘 듯 아우성인데 반해 자연은 그동안 인간에 의해 병들었던 환경이 치유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서 인류 문명이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펜데믹이 준 이 두 가지 교훈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다면 더 큰 충격으로 우리를 일깨울지 모른다. 더 이상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며 개개인들도 자신의 시간을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아실현을 통해 인류의 질적 성장을 돕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을 때가 되었다. 타고난 저 마다의 소질이 계발하여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는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고 우리 스스로 그런 의지를 갖고 자신의 꿈과 끼를 찾아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류와 대자연에 이로운 일로서 보답하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다면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바로 이런 삶이 가능하도록 더 많은 시간을 되돌려 받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며 많은 기계노예들도 이런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문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찾는 일이다. 이것은 결핍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의해 찾아지는 것이라 의지가 없으면 나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어렵다. 지금까지의 삶은 대부분 결핍을 메꾸는 삶이었기에 시간을 사용하는 큰 고민이 필요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질적 성장을 해야 하는 시기이며 이는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의해 선택해야만 하는 일이다. 


    만약 이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기계노예들과 다를 바 없게 되며 우리 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기계노예들에게 치이는 삶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이럴 때부터 자신의 소질을 찾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것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사회적 자본이 충분히 이를 지원하게 되는 사회가 바로 지성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벌어지는 아주 작은 이끌림을 소홀하게 다루지 않고 이를 살펴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고 이를 조금씩 키워가며 경지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은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지성인의 모습이며 이로써 대자연과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을 행하여 그로부터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된다면 그야말로 자아실현에 성공한 지성인의 된다. 이런 지성인들로 구성되는 사회가 바로 지성사회다. 


   지금까지는 우리 삶이 너무 팍팍해 감히 꿈도 못 꾸는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제 인류 문명은 어느 정도 사회적 자본을 축적한 상태이며 더 이상 양적 성장을 해서는 안 되는 사회이다. 이제 비로소 인간이 추구하려는 가장 상위의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누구나 구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지성사회는 누구나 자연과 주변을 사랑하며 그들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 조상들은 이런 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해 역사를 반복하며 양적인 성장을 이루어냈다면 이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질적인 성장을 통해 인류문명의 한 단계 도약을 추진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이처럼 질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시기에 태어났음에 감사하며 이를 슬기롭게 이루어낸다면 그야말로 인류 역사에 어떤 세대도 경험하지 못했던 진정한 행복을 경험하는 세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행복이 결코 물질에 의해 지속되지 않다는 점은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오로지 공동체 안에서 사랑으로 주변의 사람들과 자연을 이롭게 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누릴 수 있음도 이미 종교나 전문가들에 의해 누누이 강조되어 왔던 일이다. 단지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미진했던 것인데 이제 선배세대들의 피와 땀으로 이런 환경이 조성되어 그런 꿈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제부터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며 인류 문명을 한 단계 진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사실 인류의 지혜라는 것이 한 쪽에서는 기아로 죽어가고 다른 한 쪽에서는 쓰레기가 넘쳐나 지구가 황폐해 지는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도의 저급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방향을 찾지 못하고 걸식 들린 듯 양적 성장에만 매달린 채 병적인 비만상태로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펜데믹은 이런 인류의 어리석음에 대한 신의 준엄한 경고다.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지구촌 전체를 정말로 평화롭게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차원이 다른 지혜를 가진 인류가 되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좀 더 명확해 진다. 물질적인 것에 대한 가치는 과거와 같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물질에 대해서는 관심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대신에 각 자 타고난 저 마다의 소질을 잘 갈고 닦아 우리 주변과 자연을 이롭게 하는 지성인이 되고자 노력하게 될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이런 일에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미 인류가 만들어 놓은 물질을 전 인류가 쓰고도 남을 만큼 차고도 넘친다. 문제는 질적인 사용이다. 


   이를 위한 우리 사회의 재개발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고, 특히 우리의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한다. 따라서 교육이 완전히 새롭게 이루어져 모든 국민이 도구가 아닌 주인으로서의 삶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주어진 자유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들에 의해 이루어질 지성사회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라는 낡은 이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바탕위에 이루어지게 될 것이며 이를 위해 사회 대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교육개혁, 정치개혁, 경제개혁, 주거환경의 개혁, 정부개혁 등 모든 것을 양적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에 맞춰 거대한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도구로서의 일자리가 아니라 주인으로서의 일자리가 차고도 넘치게 될 것이고 우리 생전에 일자리 문제로 고민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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