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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진 Oct 12. 2020

육체의 재발견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이 상당히 느슨해진 틈을 타, 별로 생각하지 않던 것들이 머리에 맴돌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하나가 ‘대체 우리는 왜 움직이는 걸까?’라는 질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운전을 할 때나 길을 걸을 때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 기억이 떠오른다. 스쳐 지나가는 이 많은 사람과 자동차들은 대체 무슨 이유로 이리 바삐 움직이는 걸까? '뭐 다 나 같은 이유겠지' 라는 생각이 떠오르면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나를 잠시 책망하고는 금방 잊어 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우리가 움직이는 근본적인 이유가 알고 싶어졌다. 대체 왜 우리는 움직이는 걸까.


  선뜻 떠오르는 이유는 살기 위함이다. 인간도 동물 인지라 생존을 위해 움직인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라면 동물과 별 다를 게 없다. 태어나서 바로 움직이는 동물들을 보면 우리 인간보다 나아 보일 때가 있지 않은가. 어떻게 어미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걷는가 말이다. 아무튼 성숙한 생명체가 되기 위해 인간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생명체가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진정으로 성숙한 개체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만이 가진 특성을 제대로 발휘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 행위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닌가 싶다.


  10여 년 전에 학창 시절 함께 밴드 동아리에서 만났던 선후배들과 다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학창 시절엔 베이스기타리스트였는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보컬을 자청했다. 일단 기타 잡은 지가 너무 오래되어 자신이 없었고 노래야 노래방 다닌 실력이면 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주 큰 오판이었다. 결국 연습 때마다 멤버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감내해야 했다. 덕분에 운전 중에 쉼 없이 노래 연습을 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렇게 10년을 꾸준히 노력한 결과, 이제 멤버들의 따가운 눈총은 받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노래실력의 변화를 경험하며 얻게 되는 미묘한 희열 같은 것이 주는 행복감은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다. 이제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내 성대 근육은 나름 단련되었고 이 과정을 통해 행복을 경험하면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점은 아주 큰 수확이었다.




  하다보니 되더라

  꾸준하니 늘더라

  미치도록 좋아하니 절정이더라


   인드키(INDKY) 노래 ‘행복하더라’의 가사 중에 일부이다. 우리 삶의 목표가 ‘더 이상 보여 지는 자신이 아닌 내면의 절정감이 목표’라는 생각으로 필자가 직접 쓴 노랫말인데 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 몸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면 일단 본능적인 행동이 있고, 우리 의지에 따른 행위가 있다. 그런 행위 중에도 자발적 동기에 의한 행위가 있고, 타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여지는 행위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생각에 의해 행해지는 행위를 잘 관찰하다보면 스스로의 본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일과를 잘 살펴보면 무언가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일상을 살펴 자신의 내면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의지를 마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처럼 잘 자라게 하면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세찬 비바람 속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견인해 줄 절정의 경험이 꼭 필요하다. 


    일상의 움직임은 본인의 의지에 따라 제각각 중요하게 사용하는 부위가 다르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누구는 손을 더 사용하고 누구는 발을 더 사용하고 누구는 머리, 누구는 입 등등 서로 다른 육체의 일부 또는 전부를 활용해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지만 이를 통해 절정을 경험하지 못하면 그 행위가 지속되기 어렵다. 부모나 타인에 의해 강요된 행동이 지속되지 못하는 것은 그 행동을 통해 절정을 경험하지 못했기 떄문이다. 국내 최고의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조차도 스스로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주어진 것만 하면서 고통을 호소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아이들을 수동적인 기능인으로 키우고 있는 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자발적 의지와 동기에 기반하여 스스로의 행위를 통해 절정을 경험하는 것이 일의 시작임을 이해하길 바란다. '엘리먼트'의 저자 캔 로빈슨은 타고난 재능이 열정을 만나는 지점을 엘리먼트라 정의하고, 어떤 일이 몰입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느낌을 엘리먼트 상태라고 하였다. 이러한 엘리먼트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자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엘리먼트를 달리 표현하면 절정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행위던 관계없이 자신의 자발적 동기로부터 출발하여 절정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에 필수적 요소임을 인식해야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도구와 사람들 그리고 주변 환경은 바로 이런 내면의 만족을 위한 보조장치에 불과하다. 스포츠 선수들이 사용하는 공이나 도구는 물론이고 학습 도구, 업무 도구 등등 이런 것들 모두는 목적을 이루어내기 위해 쓰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내면의 만족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과연 나의 절정감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돈이나 좋은 것 등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절정감은 지극히 내면의 결과이며 이 느낌을 갖는데 외부적인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학벌이나 좋은 자리는 누군가 대신 만들어 줄 수 있어도 엘리먼트는 대신 해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절정감을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 행하는 것들을 주의깊게 살펴 이끌리는 것에 대해 격려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보조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공을 가지고 놀다가 너무 재미있어 기술이 만들어지고 규칙이 창조되어 축구가 되고 골프가 되고 야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절정감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유발하고 거대한 산업으로 확대되었으며 이것이 사회적 자본이 되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바로 이런 과정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기 보다는 도구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도구적 삶은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이 아니기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는 이런 도구적 삶을 대신해 줄 기계노예들을 창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산업혁명이후 육체적 노동을 대신하는 수많은 기계들이 탄생했고 이제 지적능력마저도 기계들이 대신하게 되면서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공포가 더욱 커진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도구적인 삶의 기회는 더 줄어들 것이다. 역설적으로 인간의 궁극적인 욕구인 자아실현을 구현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드디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특성인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여 진정한 지구촌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가 된 것은 아닐지.


   양적인 성장이 과한 나머지 지구를 병들게 하고 공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지금 인류는 지구촌을 잘 관리하는 지속가능발전을 추구하며 지구촌의 모든 생명체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창조해 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일의 정의가 달라져야 하며 과거에는 소수만이 진정한 일을 해 왔다면 앞으로는 모두가 진정한 일을 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자신만의 일을 찾아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사회에 기여하고 더 나아가 역사적인 가치를 구현하게 된다면, 일은 우리 삶의 의미를 찾아 주는 진정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일을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 정도로 알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사뭇 다른 정의가 될 수 있겠지만 앞으로 진정으로 일의 의미를 찾아 행하는 자들만이 기계들과 차별화되며 인간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A씨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자신의 요리를 남들이 먹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아 식당을 차렸다고 가정해 보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식당을 차린 B와는 확연히 다른 결과가 예상되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스포츠도 따지고 보면 이런 내면의 절정감이 큰 공감을 일으킨 결과다. 현실 세계에 이미 존재하는 일들 중에는 진정한 일의 범위에 속하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의 본질에서 벗어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것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그것은 일이 아니라 직(자리)다. 업을 추구하면 직(자리)이 만들어지고, 직을 추구하면 업을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듯이,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 수 많은 직들은 빠르게 기계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대체될 것이다. 그것이 지속 가능 발전을 추구하는 길이며 더 나은 미래로 나가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실 남들 보기에 화려한 그리고 부러움을 사는 위치에 있던 자들이 삶을 비관하고 자살을 하거나 또는 힘들어하는 이유도 대부분 직을 따라간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스스로가 훌륭한 기계처럼 살아 온 자들일수록 앞으로의 삶은 매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런 직의 사라짐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일은 무한히 창조 될 것이며, 바로 그러한 일을 통해서 만이 우리는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이며, 이 지구촌을 멸망을 공포속에서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촌에 가장 공포스러운 생명체에서 지구촌에 가장 훌륭한 리더십을 가진 생명체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제 진정한 일을 창조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 진정한 일을 창조하고 서로에게 이로운 일을 행하게 될 때 우리는 홍익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며 위대한 생명체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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