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이 아니라 질문을 구하라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된 기적(?)을 경험했다.
주니어 시절에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답을 찾으려는 의지가 강했다.
어떻게 답을 찾을 것인가가 최우선 과제였다.
새로운 'A'를 기획하라는 일을 받게 되면
과거에 선배들이 진행했던 유사한 사례를 파악하거나, 경쟁사들이 접근했던 방식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늘 첫 번째 순서였다.
혹시라도 적절한 선례를 찾지 못한다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에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를 경험하곤 했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 이 과정을 거쳐서 '선배'가 되어가는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익숙한가?
직장에서 90% 이상 업무는
하면 할수록 경험이 쌓이고 숙련도가 올라가서 일정한 패턴에 익숙해지는 일들이다. 선임자는 그 패턴 공식을 통해 능숙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대개 자신의 일을 10년 이상 하게 되면 그런 경지(?)에 올라가게 된다.
한편으론, 이때부터는 '다르게 생각'하기가 어려워지게 된다. 이른바 '혁신'이 불편하게 되는 시기가 온다.
이미 익숙해진 패턴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꼰대로 변신하는 시기가 이 때다.
차/부장님들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의 주된 업무는
늘 혁신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창의적인 일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게 일상의 일이 되면 사실 유쾌하지만은 않다.
익숙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숙련되면 '뻔~'해지기 때문이다.
늘 그런 부담감과 두려움을 갖다가
어느 순간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된 건
'올바른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 후부터다.
올바른 질문이란
거창하고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매우 상식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어서,
오히려 그 질문이 질문할 '깜'도 안될 것 같은 그런 내용들이었다.
'이걸 왜 해야 하지?'
'왜 지금 해야 하지?'
'이 일이 꼭 필요한 일인가?'
'내가 사장이라도 이 일을 시켰을까?'
...
에서 시작해서,
구체적인 방식, 기대하는 결과물, 이 일을 시킨 의도 등을 포함해서 백지 위에 스스로 질문지를 작성하는 게 나의 첫 번째 스텝이다.
흰 종이 위에 이 질문들을 반나절 써가면서 일의 구조를 잡는다. 혼란스럽고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들로 내 머릿속 역시 어지럽지만, 이 과정을 지나고 나면 평화가 다가온다.
반나절이 30분 정도의 길이로 느껴질 만큼
몰입의 과정을 겪는다.
이렇게 몇 번의 반복을 거치면 질문의 답이 아니라
질문 자체가 정결해진다.
꼭 필요한 질문이 정리되면
문제의 반 이상이 해결되는 느낌이 든다.
Big Questions
두려움이 사라지는 과정이다.
올바른 질문을 스스로 찾는 과정이 생각하는 힘이 된다.
이제는 일이 두렵지 않다.
두렵지 않게 되니, 새로운 것도 즐기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퇴사를 결심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