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류로 태어나고 싶은 이유
비린내 나는 향수
"워따! 뭔 냄새다냐? (킁 킁) 넌 냄새 안나냐? 생선 비린내 같기도 하고, 음식물 썩는 냄새인 것 같기도 하고 겁나 독한디!"
"글세, 난 아무냄새 안나는데......!"
같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유일한 친구 대용이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날 보기위해 목포에서 서울로 놀러왔다. 용산역에서 반갑게 악수를 나누기가 무섭게 주변에서 풍겨나는 불쾌한 냄새에 코를 찡그린다. 난 순간 느낄 수 없는 무형의 냄새가 나에게서 나고 있음을 직감한다. 친구의 입에서 튀어나온 '비린내'라는 단어는 지금 나의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가 아니던가?
그렇다. 지난 겨울부터 난 횟감 픽업및 배송 알바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매일같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들어가고, 회센터에 방문하여 횟감을 수거한 뒤, 본사 사무실에 납품 / 배송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히 근무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No stress! 수많은 사회 경험과 군 경험을 가지고 있고 직장생활, 자영업 생활도 오래 해보았지만 이 일만큼 심적 부담이 없고 자기만족이 큰 직업도 있을까? 돈보다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고 시간적 여유까지 가질 수 있는 프리랜서 같은 이 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생선과 사랑에 빠진자! 생선의 향수와도 같은 비린내가 내 몸에서 안 나고 있다는 건 지금껏 거짓을 고하고 있었다는 방증일 터! 달콤한 향수와도 같은 그 냄새가 친구 코를 자극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테다. 친구에게 이실직고 할 수 밖에 없다.
어릴 적 난 이 냄새를 지독히도 싫어했었다. 지금이야 순천 집에서 20~30분이면 갈 거리가 되었지만 과거엔 먼지나는 비포장도로를 버스로 1시간 30분간 달려야 도착하는 나의 외갓집! 늘 빽빽했던 승객들과 차안의 매스꺼운 냄새, 창밖의 뿌연 먼지들. 어린 아이가 견뎌내기엔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인고의 끝에 도착하면 올라오는 구토물을 참지 못하고 토하기 일쑤! 게다가 바닷가가 인접해 있어 비릿한 냄새까지 가세하여 날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렇듯 마을 주민 대다수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한적하고 평온한 해안가에 나의 외갓집이 있었다. 평생을 아프신 외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외할머니께서 가장 역할을 하셨는데 외할머니 또한 뱃일, 수산물 채취, 수산물 공장등 닥치는 대로 일을 다니셨으며 그 수입으로 외삼촌 및 이모들의 교육을 책임지셨다. 첫째딸인 엄마의 자식들이었던 우리 외손주들이 외갓집에 놀러라도 갈 때 쯤이면, 마을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외할머니는 일하시다 소식을 듣고는 뻘 가득 묻은 작업복에 허리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철퍽철퍽 뛰어오셔서 우리들을 반갑게 안아주시며 뽀뽀세례를 퍼붓곤 하셨다. 그런 후 호주머니에서 오늘 새참으로 받으신 사탕이며, 껌이며, 초콜릿등을 한가득 꺼내 놓으셨다. 어린 외손주들은 그럴때마다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며 싫은 표정을 지었고 외할머니 품속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쳤다.
물론 외할머니가 싫은 건 아니었다. 언제나 미소와 사랑으로 우리를 예뻐해 주셨던 분! 다만 지독히도 고약한 생선 비린내와 참혹한 행색이 자연스레 우릴 뒷걸음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날의 반찬은 대부분 생선류였고 해산물을 이용한 반찬을 우리들을 위해 준비해주시곤 하셨다. 다음날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면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진, 어제 받은 일당으로 추정되는 용돈을 골고루 나눠주셨다. 그 지폐에서 조차 비린내의 독성은 떠나가질 않았으며 어린아이가 느껴야 할 용돈의 기쁨보다 거부감이 더 컸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물론 동네 슈퍼에서 맛있는 군것질을 하며 지폐를 소비 할 때는 이 전의 비위상함을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도 시내 쥐포공장을 다니시며 몸에 생선 비린내를 묻혀 오셨다.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외할머니를 따라 출근을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집에도 비린내가 가실 날이 없었다. 심지어 학교에 가면 친구들로부터 내 몸에서 비린내가 난다며 놀림을 받기까지 했다. 어린 마음에 '공장에 더 이상 다니지 말라'며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밥상에 올려진 생선도 쳐다 보기 싫었고, 외갓집도 가기 싫었다. 비린내를 내 몸에서 지워내고자 몇 시간씩 씻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맡지 못하는 냄새를 친구들은 귀신같이 맡아냈다.
어머니의 쥐포공장 근무는 그렇게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 덕택에 난 비린내 가득한 돈으로 우유급식비도 낼 수 있었고, 학용품도 구입할 수 있었으며 일주일에 한 번씩 걷는 정기적금도 낼 수 있었다. 어머니의 비린내 덕택에 난 향수 나는 삶을 누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공장 출근이 중단되고 외할머니의 건강악화로 인해 바닷일이 끊기면서 자연스레 생선 비린내의 고통은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이제 비린내는 가끔씩 밥상에 올라오는 생선 구이 또는 재래시장 생선코너에서나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되어 버렸다. 냄새가 사라지면 모든 게 좋을 것 같았던 바람도 실상은 바뀐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삶이 더 추락했을 뿐이다. 외갓집은 바쁘다는 이유로 덜 찾게 되고, 집에선 냄새와 함께 웃음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내 몸에선 냄새가 없어진 대신 또 다른 학업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그 사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도 암을 얻으시면서 우리 삶을 지탱해주었던 비린내 나는 향수도 더 이상 맡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 버렸다.
그런 내가 지금 비린내 나는 향수를 맡아가며 알바를 하고 있다. 지독히도 싫어했던 그 향수를 매일 즐겁게 맡아보고 있으며, 자연스레 주변인들에게도 내 직업을 떳떳이 소개하고 있다. 외할머니도, 어머니도 늘 뿌리고 다니셨을 그 향수를 지금 내가 이렇게 맡으며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갑자기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향수가 그리워진다. 그 누구보다도 짙게 베여 있던 외할머니의 향수는 당시엔 몰랐지만 사랑이 가미된 세상에 하나밖에 없던 향수였었다.순간 잊을 수 없던 그 향수가 창문 밖 바람에 실려 내 방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외할머니가 오신 걸까? 넘치고 넘치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외할머니는 돌아가시면서 향수병에 담아 바람 속에 남겨놓고 가셨나보다. 마냥 속없고 철부지이기만 했던 어린 시절, 그 분의 사랑에 보답도 하지 못한 채 지금 난 향수에 취해 있다. 예전과 다르게 온전히 숨 쉬고 들이마시며 외할머니의 흔적을 찾고 있다.
시골 집에 내려갈때면 어머니는 늘 생선구이를 내게 내놓으신다. 그것도 종류별로 한상 가득 푸짐하게 말이다. 어렵게 살던 시절 생선과 비린내는 우리를 먹여살려주는 삶의 먹거리이자 고통의 매개체였다. 어찌보면 내가 저주했을 그 냄새도 물고기 세계에서는 가장 향기로운 향수일터!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나 어떤 난관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마음 가짐을 갖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천지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 만큼 어리석고 무지한 일은 없다. 그래서 지금 내게서 나는 비린내 나는 향수가 난 너무나 좋다. 그 옛날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냄새처럼 포근하고 따뜻해서 좋다.
냄새 난다고 코를 찌뿌리는 사람이 있다면 난 당당히 말 할 것이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비린내를 잠재울 수 있는 인간적인 향기가 더 많이 난답니다. 저와 잠시만 있으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5분만 곁에 있으면 냄새는 동화되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아름답고 향기 강한 세계 최고의 향수일지라도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냄새가 되듯이 말이다. 그 사이 난 다른 냄새를 내놓으면 된다.
오늘도 난 당당히 비싼 향수대신 비린내 나는 향수를 뿌리고 들뜬 출근을 준비한다. 이쯤되면 만약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래로 태어나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혹시 알랴! 전생에 어류계의 홍보대사였다며 용왕님이 찐하게 환영해줄지도.
이왕이면 고래가 되자. 그럼 내 앞에 용연향을 구입하려는 인파들로 가득 넘쳐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