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배제, 혐오에 맞서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서

by 김하종

1. 대결⠀



지정 성별 여성과 남성, 아이와 어른, 청소년과 비청소년,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과 교수(또는 대학본부).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둘로 나뉘어 끊임없이 싸우는 중이다.

나는 싸우는 걸 지독하게 싫어했다.
굳이 얼굴 붉히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대화를 통해
함께 잘 사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굳이 필요할까. 우리에겐 이미 휴머니즘이 있는걸.
서로를 인간답게 대해 준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 주변엔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런 그들에게 고상하게 권리를 주장하라고 얘기했던 나는 마음 편히 책만 읽던 백면서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싸운다는 건 두 상대가 동일한 체급일 때 비로소 성립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일방적인 폭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

또는 생존을 위한 공허한 외침으로 끝이 나고 만다.

그렇기에 역사는 홀로 소리치다 힘없이 묻히지 않도록 연대와 단결로써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을 만들어왔다.⠀
학생운동, 장애인 차별 철폐운동, 노예해방운동.
그리고 여성운동, 페미니즘 또한 그러하다.




2. 소설 <82년생 김지영>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보면
"작품 속 이 부분은 나로서는 공감하기가 어려워."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 여성에게만 유독 그렇게 공감해야 해?' 또는 '그냥 꼴페미들만 읽는 책 아니야?'
대놓고 비난하는 사람들 중 단 한 페이지라도 읽어본 사람은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재정위원회에 들어가 학생 권리를 주장하는 학생대표에게 교수들은 절대.
"너희들이 주장하는 이 부분은 이래서 힘든 부분이 있어."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가 왜 너희들 말을 그렇게까지 들어주어야 해.' 또는 '학생이라 아직 몰라서 그래.'
학생들은 학교에서 단 한 번이라도 떼쟁이가 아닌 주체로써 발화해 본 적은 있었을까.

꿈과 미래를 말하며 성적이 꼭 중요하냐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절대.
"너희들의 생각을 나로선 이해하기가 힘들구나"라고 하지 않았다.
'세상사는 게 그렇게 쉽니?' 또는 '어려서 몰라서 그래 그냥 공부나 해!'
아이들은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의 아들, 딸이 아닌 주체로써 기능해 본 적이 있었을까.

누군가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섣부른 아는 척은 더 큰 오해와 부작용을 부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삶을 살아보지도 않았고 당신이 아니기에 나는 당신을 알 도리가 없다.
지정 성별 남성은 여성의 삶을 완벽히 알 수 없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삶을,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삶을 절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
바로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이다.



3. 영화 <82년생 김지영>



원작 스토리가 워낙 탄탄한 덕분도 있겠지만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그만큼 영화화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원작보다는 조금 희망적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중의 마음속에도 부담 없이 스며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또 그러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페미니스트가 되기엔 한남충의 조건을 너무도 잘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한남충도 맘충, 김치녀, 된장녀도 이 땅에서 죽은 언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4. 그럼에도 이렇게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책도 읽고 세미나도 다니면서 공부한다고는 했지만

나는 아직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조금도 알지 못한다.

다만 아는 것이 있다면 우리 앞에 놓인 눈에 보이는 현실들이다.

나는 꼬박 3시간을 고민한 끝에 이 글을 업로드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평생을 고민하다가 단 한마디도 올리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나는 이 글을 올렸다고 심하면 쌍욕이나 몇 번 듣고 말 것이다.
그마저도 하루 이틀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누군가는 책 한 권 인상 깊게 읽었다고 말한 탓에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누군가는 좀 당당히 살아보겠다고 몇 마디 했다가 평생을 기사 속에서 수모를 당해야 했다.
아니, 죽어서까지도...

같은 영화를 찍었지만 배우 공유에게는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비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82년생 김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