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이 만들어 낸 여백의 온도
스탠드 불을 낮추고
책 한 권을 책상 가운데 놓는다
표지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
먼지처럼 쌓인 숨을 내려놓는다
첫 장을 넘기다 멈춘 자리에서
달력의 빈칸이 떠오른다
앉을 데 없던 날들,
오늘은 그 칸에 잠시 앉아 본다
현관에서 신발끈을 고치듯
흩어진 마음을 한 번 묶고
가볍게 매듭 지어
다음 문장으로 간다
눈물은 페이지 가장자리에서
얇게 번지다 멈추고
나는 그 위에 손가락을 대어
더 번지지 않게 받쳐 둔다
그제야 알았다. 읽는 일은
붙잡는 일이 아니라
떨어지지 않게
잠시 받쳐 주는 일이라는 걸
오늘의 끝 문장에
“여기까지”라고 적고
책을 덮는다
스탠드 불을 끄고
남은 숨을 한 번
길게 내쉰다
나머지는
내일 아침이
이어 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