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초대장

초록 반달, 잔이 부딪히는 밤

by 김하종


옆집에서 모종 몇 포기를 빌려 심으면

잎맥이 빛을 따라 천천히 펴지고

골마다 이슬이 알처럼 박힌다.

겉잎을 따내도 속에서 다시 밀려오르니

상추의 시간은 둥글게 돈다.


바구니엔 초록 잎들이 포개진다.


모종값은 저녁 쌈으로 갚는다.

오늘 저녁, 초대장 한 장을

마을에 돌린다.


해 기울면 마당에 불빛이 켜지고

너도나도 양손 가득 들고 마중 나온다.

상추 한 장에 쌈장 콩알, 마늘 한 쪽,

노릇한 한 점, 그리고 그이의 이름 하나를 얹어 싼다.


왁자지껄 접시가 돌고

잔들은 초록 반달로 부딪힌다.

오고가는 쌈 한 점에

온갖 사랑이 풀린다.


밤이 깊어도 바구니는 비지 않는다.

잘려 나간 자리마다 내일의 잎이 돋고,

텃밭은 다시 초록 초대장을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