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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과 사랑

흑백사진

인화된 시간 속, 마음을 건넨다

by 김하종

배경지가 또르르 풀려 내려오고

회색이 벽을 얇게 덮는다.

부드러운 조명의 손길이

볼 위의 그림자를 고르게 문지른다.



그때 우리는 나란히 섰다.

단추가 고르게 선 어두운 정복,

작은 휘장이 잿빛 비늘처럼 반짝였고,

너는 하얀 티셔츠의 부드러운 긴 소매와

허리 매듭을 묶은 채

검정 운동화로 바닥을 평온히 딛었다.


손과 손이 가운데서 한 번 더 포개지며

미소가 조용히 빛을 맞았다.



네 칸의 우리,

턱을 괴고 장난을 치고,

어깨를 맞대어 웃으며

서로의 눈을 조금 더 가까이 데려오던 날들.


보도블록 위로 지나가던 바람까지

작게 인화되어 있었다.


흑과 백 사이에서

나는 조용한 회색을 택한다.

가장 뜨거웠던 장면을 품고,

오늘의 표정을 덧칠하지 않는다.



아카이벌 슬리브에 넣은

한 장의 사진처럼,

과거는 먼지 없이 보관하고

오늘은 매일의 빛에 맡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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