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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과 사랑

메밀꽃이 남은 자리

장면이 시간이 될 때

by 김하종


방파제 끝에서

메밀꽃 한 다발을 들고

서로의 손을 맞잡고 서 있었다.



함께 걷던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손바닥만 한 작은 네모 속 바다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파도보다 먼저

그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문득,

나는 혼자 그곳을 다시 찾았다.


바다는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밀려오고

방파제 위 난간만이

살짝 더 녹슬어 있을 뿐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그 빈자리를 오래 바라보고 있다.



지나가는 시간만큼

나는 조금씩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여기까지 걸어온 나의 발자국이

더 또렷이 들려오는 시간.


이 자리에

이름을 다시 지어 본다.

장면을 붙잡아 두던 곳이 아니라,

파도 소리 사이로 숨을 고르고

다시 걸어 나가기로 약속한다.



언젠가 다시

주문진 앞바다를 지날 때면

메밀꽃을 또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은 단단해진 나의 옆모습과,

오래 전부터 여기 있었던 바다가

나란히 서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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