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이 시간이 될 때
방파제 끝에서
메밀꽃 한 다발을 들고
서로의 손을 맞잡고 서 있었다.
함께 걷던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손바닥만 한 작은 네모 속 바다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파도보다 먼저
그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문득,
나는 혼자 그곳을 다시 찾았다.
바다는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밀려오고
방파제 위 난간만이
살짝 더 녹슬어 있을 뿐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그 빈자리를 오래 바라보고 있다.
지나가는 시간만큼
나는 조금씩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여기까지 걸어온 나의 발자국이
더 또렷이 들려오는 시간.
이 자리에
이름을 다시 지어 본다.
장면을 붙잡아 두던 곳이 아니라,
파도 소리 사이로 숨을 고르고
다시 걸어 나가기로 약속한다.
언젠가 다시
주문진 앞바다를 지날 때면
메밀꽃을 또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은 단단해진 나의 옆모습과,
오래 전부터 여기 있었던 바다가
나란히 서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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