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양

작은 여백이 다듬어낸 노동

by 김하종


장갑 낀 손들이

일렬로 줄을 지어

나사와 박자를 맞춘다

컨베이어는

말 없는 강처럼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휴게실 문이 열리면

소음은 바깥 언저리에 맴돌고

종이컵 속 따뜻한 커피가

식도를 지나며

문장 하나를

쉼처럼 빚어낸다



손목 안쪽이 다시 조여지고

볼트가 제자리로 돌아가듯

몸속 깊은 곳에서

천천히

힘을 되찾는다


노란 선은

발끝을 안전하게 데려가고

경고등은

늦기 전에 먼저 깜빡인다

서로의 그림자가

부딪히지 않도록

작업대 위로

조용히 자리를 비킨다



줄 지어 늘어선 손들은

각자 리듬을 가지고

저마다의 장단으로

조금씩

가벼워진다


퇴근을 알리는 벨이 울리면

사물함 문들이

차례로 저녁을 열고

땀에 젖은 장갑은

오늘의 서랍에

두고 간다



공장 문을 나서며 알게 된다

이 하루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

작은 여백이 다듬어낸 노동이

내가 붙잡고 싶은

삶의 모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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