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기후위기가 아니라 기후 '불평등' 위기다.
세계는 지금 기후위기 시대를 각자의 방식대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각계각층이 나서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31일에는 대학생들이 캠퍼스에서부터 사회체제까지 바꾸어 보겠다며 기후행동에 나섰습니다.
대체 왜 대학생들은 코로나 19 시대에 취업이나 스펙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기후행동을 하겠다고 거리로 나왔을까요? <대학생 기후행동>으로 모인 대학생들은 제각각 학교도, 지역도 다르고 전공마저도 경제학, 환경공학에서 교육학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도저히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개성 넘치는 대학생들은 어떻게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을까요?
코로나 19, 끊임없이 반복되는 대형 산불, 역대 최장기간의 장마, 기록적인 폭염, 쉼 없이 올라오는 가을 태풍, 난데없는 여름철 폭설, 그리고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과 혹한의 추위까지. 인간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당면한 기후 문제와 생태문제 앞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기후위기를 적극적으로 대응할 책임이 있는 국가가 그 역할을 생각하는 만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다지 절실해 보이는 것 같지도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개개인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인간이 파괴해온 자연을 복원하고 지구에서 함께 사는 생명들을 살려보겠다고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누군가는 식목일이 되면 손발 걷어 부치고 나무를 심는데 열중합니다. 학교에서는 분리수거, 잔반 줄이기 캠페인을 연례행사처럼 진행합니다. 집에 가면 사람이 없는 방 불은 항상 끄고 다니고 화장실 물을 아껴 쓰라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오고 갑니다. 최근 트렌드처럼 환경을 생각한다며 플라스틱 take-out잔 대신 텀블러를 들고 다닙니다. 종이 빨대, 옥수수 빨대, 대나무 칫솔 등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생활용품들이 몇 년 사이에 수없이 시중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탄소배출은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북극의 빙하는 점점 형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학생 기후행동>은 문제는 탄소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며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10.31 ‘대학생 기후행동의 날’ 퍼레이드에 참가한 한 서포터즈는 처음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평소 과하게 커피를 마시며 플라스틱 잔을 많이 소비하고 육류 섭취를 너무 많이 하고 있는 스로에게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 기후행동> 서포터즈를 활동을 하며 세미나를 통해 근본적인 문제는 애초에 필요한 만큼보다 생산하고 소비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특히, 혼자서 텀블러를 사용하는 정도의 개인적 실천만으로는 지구에게 남은 시간 7년 안에 기후위기를 획기적으로 막아낼 수 없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보다 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대상은 단순히 보이지 않는 ‘온실가스’만이 아닙니다. 지구 전체를 위협하는 온실가스에 대항하기 위해 전 세계가, 온 국가의 양심 있고 개념 있는 국민 모두가 다 함께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협력하고 단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진실을 은폐합니다. 현재의 불평등과 모순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 선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함부로 ‘우리 모두 We all’를 말한다면 그 뒤에 비열한 꼼수가 숨겨져 있지 않나 경계하고 차갑게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흔히 ‘국가를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근면 성실하게 일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인간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항상 (어떠한 형태이던지) 힘의 차이에 의한 억압과 위계질서, 그로 인한 불평등과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환경 다큐멘터리 감독 브랜다 롱펠로는 “기후위기가 지구적인 차원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것의 영향과 그 영향이 경험되는 방식은 계급, 인종, 지역, 경제력, 사회적 취약성 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한편, 『폭염 사회』를 쓴 에릭 클라이넨 버그는 1995년 시카고 폭염 대참사를 취재하며 사회적으로 해부해 폭염의 불평등 문제를 다뤘습니다. 시카고 폭염은 1995년 7월 12일에서 20일까지 약 9일의 기간 동안 약 739명이 폭염으로 사망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같은 도시 내에서의 기후 불평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대도시 내에서도 잉글우드와 같은 가난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부유층~중산층은 약간의 문제를 겪었을 뿐, 에어컨을 틀거나, 정전이 발생해도 휴가를 가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폭염 시에, 시카고 시장은 별장에서 휴가 중이었습니다.) 주거지에 따라서도 극명하게 갈렸는데, 시카고 유산 관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160명 사망자 중 62명이 원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취약계층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 원룸이었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와 취약성은 전 세계의 지역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납니다. ‘기후변화 지도’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엄청난 직격탄을 가장 먼저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취약지역들은 모두 아프리카 일대와 남아시아, 남태평양 인근의 작은 섬나라들입니다. 중국 일부를 제외하면 OECD 국가 중 단 한 나라도 현재 이 취약지역에 들어가는 나라는 없습니다. 빈곤과 낙후된 의료로 고통받는 세계에서 제일 못 사는 남반구의 제3세계 국가들이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최장기간 장마는 기후 문제의 불평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최장기간 장마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은 전라남도 구례 등을 비롯한 하수도 설비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농어촌 지역이었습니다. 실제로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한 서포터즈는 지난 장마기간 동안 비대면 수업을 한 탓에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 비가 내리는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문제는 기후위기가 아니라 기후 '불평등' 위기입니다. 김한결 대학생 기후행동 정책국장이 기후 불평등을 강조하기 위해 즐겨 쓰는 용어이기도 한데요. 기후 불평등 위기는 “기후 비상사태의 당사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 할 때 보다 분명해집니다. ‘기후변화 지도’는 결국 지리적·공간적 위치에 따라 기후변화 피해의 심각성과 심화 속도가 매우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도달과 (인류가 막을 수 없는) 기후 재앙의 현실화는 분명 전 지구적인 문제지만, 피해와 생존의 문제는 거주 지역과 위치에 따라 위기와 비상의 시급성이 철저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비교적 지금은 안전한 북반구조차 생존 가능지역 즉, 기후위기의 안전지대는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희소해질 것입니다.
“호주국립기후복원센터”의 2019년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긴급동원과 같은 규모의 전 지구적 동원에 실패할 경우 2050년 전 세계 대부분의 주요 도시가 생존 불가능한 환경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후위기로부터 상대적인 안전성에 따라 지리적 가치가 정해지고 생존 가능한 자와 생존 불가능한(살아있어도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자들의 땅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더 안전한, 아직은 안전한 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길 수 있는 사회경제적 특권을 가진 사람들만이 경계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이것이 기후 문제가 정치·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체제 전반의 문제인 분명한 이유입니다.
<대학생 기후행동> 강원지부장이면서 초등 예비교사로서 기후행동에 나선 이유기도 하며 기후행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후행동에 나서는 일은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지키기 위한 일이며, 스스로 품은 꿈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훗날 교단에서 만나게 될 아이들에게 정치·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물려주지 않고 당당하게 이 사회에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 행하는 절절한 교육 실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