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려운 길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유
기후위기는 더 이상 눈감을 수 없는 위협입니다. 안병옥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은 “기후변화는 핵전쟁에 버금가는 위험요인이기 때문에 전시체제에 준하는 자원 및 인원 체제를 동원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라고까지 말합니다.
전쟁 중도 아닌데 어떻게 전시체제에 준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2020년 한 해 동안 이미 해오고 있었습니다. 국가는 매주 정해진 날에만 직접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서 쓰도록 합니다. 카페에서는 포장과 배달만 가능하고 학원과 노래방은 문을 닫게 합니다.
지난 상반기 초, 중등학교는 온라인 개학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겪었고 2021년 해맞이 명소들은 전부 폐쇄당했습니다. 유럽에서는 도로를 봉쇄하고 시민들의 이동을 금지했습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모든 회사에 출근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했습니다.
코로나 19 이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재난 상황은 이렇듯 긴급하고 총체적인 변화를 정당화합니다. 이 말인즉슨 그 어떤 변화도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한국판 뉴딜 안에도 그린 뉴딜 정책을 언급하고 있지만 기후위기 대응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우리에게는 안일하게 대처할 만큼 그렇게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온실가스 배출원을 반드시 억제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산업의 대부분은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형 경제활동은 온실가스의 배출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탄소 의존 경제에서 탈탄소 지속 가능한 경제로 전환한다는 말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모든 경제활동을 근본적으로 갈아엎는다는 뜻입니다.
체제 전환의 과정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습니다. 기후위기라는 급한 불을 끄려다가 우리 손으로 기존에 있던 초가삼간을 모두 불태우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체제를 전환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좌초위기산업’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석유화학, 원자력, 자동차, 플라스틱, 석유화력 발전산업의 노동자들을 모두 합하면 거의 100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에너지 전환에 따른 위협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큰 축산업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석탄화력발전소 앞에서 ‘화력발전 중단 시위’를 하다 보면 발전소 노동자들에게 ‘이러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듣기도 하고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구조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이로 인해 ‘좌초 위기산업’ 일자리가 위협받지 않도록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요구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유엔 기후변화 협약에서는 이렇듯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발생하는 악영향에 대처하는 노력을 ‘정의로운 전환(공정한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온실가스를 줄이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체제와 산업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 희생이나 지역사회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뒷받침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대규모로 경제 체제가 전환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실업과 빈곤에 빠지고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처지에 놓이는 행태를 반복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부정의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기후위기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 바로 ‘정의로운 전환’입니다.
“노동자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 정의로운 전환 계획은, 한 세기도 넘게 우리 경제를 위해 에너지를 생산했지만 기업과 정치인들에 의해 너무나 쉽게 무시되어온 화석연료 노동자들을 우선적으로 돌볼 것이다. (중략) 장애인, 기후재난의 영향으로부터 회복 중인 노약자에게 정의를 실현시킬 것이다. 그리고 기후변화의 영향을 극심하게 받는 지역공동체에 진짜 일자리, 회복력 강한 인프라, 경제발전을 포함한 정의로운 전환을 제공할 것이다”
-버니 샌더스 美 상원의원-
우리에게 기후변화는 고통스럽고 극심한 재난입니다. 하지만 기후 불평등과 부정의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등 ‘기후 정의’ 실현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위한 변화의 기회로 바꿔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변화의 중심에 우리 자신이 서 있어야 합니다.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탄소배출이 7%가 감소했습니다. 정부가 강제로 공항과 항만을 닫고 경제활동을 멈춘 결과입니다. UN에서 목표로 하는 2030년 탄소배출 50% 감축을 위해서는 앞으로 10년간 2020년과 같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과연 어느 나라 정부가 그것을 강요했을 때 국민으로부터 저항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들리기까지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가 믿어왔던 모든 가치체계들이 모조리 박살 나고 있습니다. 무한 성장의 신화도, 지구촌을 꿈꿨던 세계화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닙니다. 끝없이 욕심을 부려도 ‘보이지 않는 손’이 아름다운 균형을 잡아줄 것이라는 전 인류적인 신앙은 6번째 대멸종과 2050 거주 불능 지구를 앞당기는데 일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합니다.
언제나 체제가 송두리째 흔들리면 민중은 대안을 찾아왔습니다. 1차 대전 이후 러시아는 공산주의, 이탈리아는 파시즘을 선택했습니다. 독일 국민은 대공황 때 나치당을 선출하기도 했습니다. 한낱 옛날이야기 정도로 치부할 문제가 아닙니다. 코로나 19로 정부가 무소불위의 힘을 얻고 있는 지금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이기도 합니다. 기후위기를 빠르고 확실하게 해결하겠다는 전체주의가 곧 인기를 얻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서양에서는 에코 파시즘이 등장해 뉴질랜드와 미국에서 연달아 에코 파시스트의 총기난사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경제 및 평화연구소(IEP)에서 발간하는 「전 지구적 평화지수(GPI)」는 2019년부터 기후변화를 분석에 포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GPI는 기후변화와 평화의 관계를 ‘적극적 평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GPI는 적극적 평화의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기후위기의 충격을 잘 관리하고 환경을 잘 보전하는 나라라는 분석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 분석 결과는 민주정치의 수준, 타자에 대한 관용과 수용도가 높을수록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능력도 크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민주주의의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국민들을 통제하고 경제활동을 강제로 멈출 수 있는 국가 권력을 견제할 힘이 필요합니다. 혁명적 변화를 통한 급격한 체제 전환 과정에서 배제되고 낙오하는 사람들을 세심하게 챙기라고 호통을 칠 수 있는 세력이 필요합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 주체가 되어 변화의 중심에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체제를 전환한다는 것은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홍수를 앞두고 노아의 방주를 건조하는 일입니다. 그만큼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대재앙이며 생존을 위한 마지막 신의 심판일지도 모릅니다. 살기 위해 새로 건설하는 사회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튼튼하고 촘촘해야 합니다. 적어도 배가 침몰한다고 옆 사람을 물속으로 던지는 불상사는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정의로운 전환’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