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역사여행 1] 광주

아이들에게 물려줄 이 세상이 부끄럽지 않도록

by 김하종

2020년은 코로나 19로 좋아하던 여행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습니다.

올해도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기에는

아무래도 힘들듯합니다.


그래서 지난날 돌아다녔던 지역들을 되돌아보며

방구석에서나마 그때를 떠올르며 나홀로 역사여행을 떠나보려 합니다.


그 첫 여행지는 바로

5월 광주입니다.


지난 2018년, 대학을 졸업하고는 처음으로 광주에 방문했습니다.

광주 유스퀘어 광천터미널 부근 카페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한 때는 금서로 지정되어 목숨을 걸고 읽어야 했지만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에겐 필독서였던 책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탁 트인 공간, 카페에서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한가로이 읽어도

그 누구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습니다. 상당히 오묘한 기분이었습니다.

광주에는 518 민중항쟁을 기리는 의미로 518 관련 역사적 장소를 관통하는 518 버스가 다닌다.

매년 광주에 왔지만 항상 버스를 대절해서 오다 보니 518번 버스를 보기만 봤지 직접 타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터미널에서 국립 5ㆍ18 민주묘지까지 약 50분,

남아있던 책을 읽으려고 펼쳤지만 곧바로 덮고 말았습니다.


눈 앞에 펼쳐지는 그 모든 것들이 책 속에 적힌 그것이었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전남대 학생들,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국립 5ㆍ18 민주묘지를 향해 버스로 몸을 싣는 이들.


38년 전 그들이 걸었던 금남로.


그 자체로

5월 광주에 있는 듯했습니다.


국립 518 민주묘지에 도착해서

민주의 문 앞에서 KTX를 타고 부산에서 올라온 듯한 고등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저녁에 PC방에 가자며 웃고 떠들고 있더군요.

PC방 갈 시간도 아까운 친구들이

이 곳에는 대체 왜 와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느꼈을까요?

선조들이 꿈꿨던 유토피아, 대동세상.

이 세상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그런 세상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5ㆍ18 민주묘지에서 대동세상군상을 한 아이가 바라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뒤숭숭한 마음을 다잡으려

제일 먼저 5ㆍ18 민주묘지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대동세상군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작은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카메라에 그의 뒷모습을 담았습니다.


아직도 궁금합니다.


그 아이의 눈동자는

대체 무얼 가리키고 있었던 걸까요?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갈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그 세상 속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요?


그 세상을 살아갈 우리 아이들.

이 세상을 함께 지키고 만들어갈 주체들입니다.


하지만

미래가 없는 미래세대에게

미래를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구 가열화와 기후위기를

촉발시킨 책임이 있는 자들이

또다시 해결이 주체 행세를 하며

뒤흔들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들을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모든 의사결정에서 배제해야 할 뿐 아니라

미래를 빼앗은 범죄에 대한

배상의 책임을 물어야만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정의를 세우는 일입니다.


20년 뒤

그때 그 아이가 이 곳에 다시 와서

'대동세상군상'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했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아이의 뒷모습을 되짚어 보며

많은 생각이 듭니다.


20년 뒤 우리를

원망하지는 않을까.


그것이 무척이나 두렵습니다.

옛 상무대 헌병대가 있었던 5ㆍ18 자유공원,

5ㆍ18 자유공원 입구에 있는 표지석

시간이 없어 하나도 둘러보지 못하고 상무대로 복귀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대한민국 육군 포병장교로 임관하여

상무대에서 초군반 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에게 상무대는

슬픔과 아픔이 서린 공간인 동시에

긍지와 자부심의 공간이었지요.


한 번쯤은

이 곳 광주에 군인 신분으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계엄군이 광주를 점령하고 군가를 부르는 장면, 한 군인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대부분은 병역의 의무를 지냅니다.

5ㆍ18 당시 투입된 특수부대원들도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에게 발포명령이 떨어지면 시민을 향해 총을 쏠 수 있었을까?

"시민을 향해 실탄을 발포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었을까?"

5ㆍ18 자유공원 앞 들불열사 기념사업회에서 세운 들불열사 기념비

5ㆍ18 자유공원 옆에는

들불열사들을 기리는

비석이 있습니다.

그들은 소외된 이들의 벗이자

억압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벗이었습니다.


민중의 벗.


그들의 삶을 보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누군가의 진정한 벗이 되어 줄 수 있을까?


교육대학교 통일교육 모델 확산을 위한 세미나

광주에서 기행을 온 교육대학생들을 만났습니다.


무엇인가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다 보면

매번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교과서에 적힌 이상적인 현실과는 다른 학교 밖 세상 때문에 말이지요.


우리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전혀 민주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 눈 감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이는 교사들이, 예비교사들이 바깥세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단순히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지금의 세상을 가르치고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게 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만은 아닐 겁니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상이

부끄럽지 않도록 만드는 것도

어쩌면 교사의 또 다른 책무이지 않을까요?



#5월의광주 #죽음을_넘어_시대의_어둠을_넘어 #시대의_금서 #518번버스 #부릉부릉 #국립518민주묘지
#대동세상군상 #대동세상을_꿈꾸며 #518자유공원 #민중의벗 #들불열사

매년 광주로 떠나는 후배들에게 약소한 간식이나마 보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