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역사여행 2] 남산 둘레길

남산을 따라 걸으며 근현대사 100년을 산책하다.

by 김하종

나홀로 역사여행 두 번째 여행지는

남산 둘레길입니다.


지금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뀐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작해

남산골 한옥마을, 통감관저를 거쳐

백범광장까지 이어지는 코스이지요.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사망한 509호실의 모습이다.

박종철.


대학시절 평전을 읽으며

30년 전 그의 대학생활과

제 자신의 대학생활을 비교하며

웃고 울었던 기억이 아직 훤합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노래 한 곡 뽑아내는 그의 모습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책 사 읽을 돈이 없는 후배에겐 사비를 털어

책을 사다 주고, 자신의 옷가지 등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주었던 종철이 형.


끝내는

그의 목숨마저도

내주었던 형.


어쩌면 그를 닮고 싶어

그렇게 후배들에게 책을 선물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옥에 있을 땐 자신보다도 아꼈던

몸이 아픈 후배의 건강을 먼저 신경 썼던

가슴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민주인권기념관에 전시 중인 박종철 열사의 유품이다.

그가 떠났을 때 언어학과 선ㆍ후배들은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라며 울부짖었습니다.


우리 옆에 가까이 있던 내 동기들과

다르지 않았던

대학생 박종철.


한 가지 다른 건 그는 죽었지만

나의 친구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생전 좋아했다던 노래 "그 날이 오면"

그가 꿈꾸던 그 날은 온 걸까요?


그래도 우리는 대통령 욕을 한다고,

집회시위를 조직한다고 해서

적어도 죽지는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2017년 1월 14일 새벽.

박근혜 퇴진 운동이 한창이던 그때,


그 추운 날 국립묘지도 아닌

축축한 모란공원에

묻혀 계시는 박종철 열사를

홀로 뵙고 왔었던 적이 있습니다.


나의 동료들이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종철이 형 덕분이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87년 헌법 개정 이후

적어도 강제구금과 고문수사는

사라졌으니까요.

남산타워에 걸린 사랑의 자물쇠(출처:네이버 라라조이의 블로그)

여러분은

남산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꽃놀이하러 가는 곳,

연인들이 영원을 약속하며 자물쇠를 잠그는 곳,

남산타워, 케이블카, 왕돈가스.....


남산은 연인들을 위한

낭만의 공간이지요.


하지만 지금의 남산 모습과는 달리

지난 100년간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

남산말고 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관광객들이 자유로이 드나드는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남산골 한옥마을의 정경이다.

충무로역 3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보이는 그곳.


남산골 한옥마을.


상당히 아름답습니다.

이전까지 서울 시내에 이런 곳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 곳은

일제시대 조선헌병대 사령부가 있던 곳으로

조선 수탈의 시작점인 곳입니다.


한옥마을 정문에서부터 창덕궁 돈화문까지

쭈욱 뻗어있는 도로, 충무로는

일제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는 너무도 뻔합니다.


그들의 낸 신작로는

조선을 점령하는 진격로였습니다.

서울특별시청 남산 1별관으로 사용 중인 옛 중앙정보부 본관이다.

7,80년대

남산자락에 있었다는

대공수사본부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당시 고문실 등은 40여 개가 있었지만

현재 남아있는 것은 3,4개뿐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서울특별시청 남산 1 별관,

서울 유스호스텔,

서울종합방재센터 등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누군가의 설명이 따로 없으면

과거의 어떤 곳이었는지 알 길이 전혀 없습니다.

통감관저 터를 알려주는 표지석이다.

조금 더 걷다 보면 통감관저터가 나옵니다.


이곳은 1910년 8월 22일 총리대신 이완용과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한일병탄 조약에 서명한 경술국치의 현장입니다.

일제시대에는 경복궁 옆 새 관사가 지어지자

일제 치세를 홍보하는 시정 박물관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통감관저터 비석은 2010년 8월.

시민들이 힘을 모아 표석을 세웠습니다.

글씨는 신영복 선생님의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그 옆에는 을사늑약의 주동자 하야시 곤스케 동상의 잔해를 모아 세운 '거꾸로 세운 동상'이

통감관저 부근에는 여러 상징조형물들이 있다.


그 주변에는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추모 공간 '기억의 터'와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 설치작품이 있습니다.


나무1 - 너는 다 보았다-
김하종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그 곳에 홀로 서서 어찌 다 보았을까.

통감관저는 무너지고 주변은 온통 변하였는데
은행나무 너 하나는 변함없이 그 자리구나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너희는
그 곳에 서서 아무런 말도 못 하는가.

108년이 지난 지금, 우리 기억은 희미한데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너는,

아직도 그 때가 생생한가 보다.
그래서 그렇게 한 걸음도 떼지를 못하는구나.

출처 : https://brunch.co.kr/@hajongkim20/4

통감관저 터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다 보면
백범 광장으로 가기 전에


안중근 의사의 글들이 적힌 비석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백범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안중근 의사의 명언이 적혀있는 비석을 볼 수 있다.

건물이나 유적보다도 글자들에 더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제 천성인가 봅니다.


06시 30분에 일어나 남산에서 남영동까지

한 10km 정도 걸었나 봅니다.

그 길에는 지난 우리의 100년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 살거나 그 동네 주민이라고 한들

제대로 설명을 듣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코로나 19로 멀리 놀러 가지도 못 하는 요즘

서울에 사신다면 남산을 따라

근현대사 산책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일.

그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아픈 역사라고 할지라도

결국 우리가 품어야 할

가치 있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근현대의 역사를

지우려는 자, 감추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은 밝아지는 것처럼

감추려 할수록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제발 괜시리

서로 힘 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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