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의 끝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래도 괜찮다.
뭐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던 시기였다. 나를 응원해 주지 않을 거라면 가만히라도 놔뒀으면 좋겠는데, 모두가 한 마디씩 거들었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지.'
아니, 나 좋으라고 하는 말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왜 귀는 입처럼 닫을 수 없게 설계된 건지 진심으로 조물주가 원망스럽던 날들이었다. 귀에 피가 나지 않으려면 일단 피해야 했다.
혼자 산책을 자주 했다. 산책로가 있지만 그곳은 늘 사람으로 붐비니 그냥 정처 없이 사람을 피해 걸었다.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거슬렸던 건, 나조차도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였다. 호기롭게 선택한 이 길이 내가 잘할 수 있는 길은 맞는지, 이 길의 끝에는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있는 건지, 애초에 내가 원하는 모습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그 어떤 것도 알 수가 없었다.
확신 없는 미래는 내가 그 어떤 길 위에 서있어도 길을 잃은 기분이 들게 했다. 그 어디도 갈 곳이 없어서 영영 길을 잃은 것만 같이 막막하고 두려웠다.
닿을 곳이 없어서 그냥 계속 걷고 또 걸었다. 길을 잃으면 그곳에 꼼짝 않고 서 있으라 하던데, 그건 어린이만 해당되는 것 같다.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그 누구도 찾으러 오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 대신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가만히 서 있다가는 해가 져 버리고, 땅이 꺼져버릴 것 같은 어둠만 찾아올 뿐이었다. 해가 떠있을 땐 부지런히 어딘가를 찾아 걸었고, 해가 지려고 할 땐 빛이 보이는 곳을 찾아 걸었다. 그게 목적지를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에.
그렇게 걷다 보니 여전히 길은 몰라도, 걷는 것만큼은 자신이 생겼다. 두 다리에 힘이 생기고 얼마든지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니 길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길을 만났을 때는 골목골목을 찬찬히 거닐어보는 여유도 생겼다. 나와 맞지 않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면 큰 길로 나가 새로운 길을 찾아 또 걸었다.
아직도 나는 내가 어디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가고 있는 길의 풍경이 싫지는 않다. 좋아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길의 끝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래도 괜찮다.
또 다른 길로 걸어가면 되니까.
내게 필요한 건 수만 갈래의 길이 그려진 지도가 아니었다. 길은 몰라도 된다. 길을 잃었다는 패닉에 발걸음이 얼어붙지만 않으면 된다.
기꺼이 길을 잃을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언젠가 내 마음에 드는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god, 길 가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