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후회 없이, 미련 없이, 꿈과 사랑할 수 있는 방법.
오전 7시 20분, 분주히 어디론가 출근을 하는 차들 사이를 지나 카페에 도착한다. 카페 오전 파트타이머로 일하는 내가 오픈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음악을 트는 일이다. 카페 일을 하기 전에는 TOP 100을 들을 일이 없었는데, 시스템 구조 상 강제로 매일 아침 TOP 100과 함께하는 중이다.
처음엔 원하는 노래를 들을 수 없어서 투덜투덜거렸는데, 익숙해지니 요즘은 사람들은 이런 노래를 좋아하는구나 하며 듣고 있다. 반복적으로 들리는 노래들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라는 노래였다.
'당연히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렵지!! 뭘 당연한 소리를 가사로 써놨대.' 했는데, 알고 보니 사랑에 대한 가사가 아니라 '꿈'에 대한 가사였다. 꿈과의 만남은 쉽지만, 꿈과의 이별은 어렵다. 꿈을 꾸는 건 쉽지만, 꿈을 포기하는 건 어렵다.
아직도 기억나 차 안의 공기가,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짜릿했던 뭔가가.
6살이었지만 알았었지 뭔가 다르단 건,
그렇게 쉽게 만나게 되는 거야 꿈이란 건.
베이식,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가사 中.
어렸을 때는 '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설렘이 있었다. 마음속 깊이 닿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볼 때처럼, 꿈을 꾸는 순간 꿈을 이루는 장면들이 영화처럼 그려져서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알게 됐다. '꿈'이 주는 설렘은 가슴 아픈 짝사랑에 가깝다는 걸.
현실에서 꿈은 내 월세를 내주지도, 내 식비를 대주지도, 내 팬티 한 장을 사주지도 않았다. 유명 웹툰 작가인 주호민 님은 그의 웹툰에 이런 대사를 쓴 적이 있었다.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 그는 후에 이 대사에 대한 답을 남긴 적이 있다.
2008년에는 꿈에 방점을 찍고 쓴 대사였습니다만 그사이 세상이 너무 변해서... 경제는 더 어려워질 것이고 생활고로 인한 자살 뉴스는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밥을 먹어야 꿈도 꾸겠지요.
주호민 (@noizemasta) 2016년 10월 12일
그는 생활고로 요절하는 이들을 보며, '못 이룬 꿈'이 아닌 '못 먹은 밥'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의 가사 중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다들 꿈이란 건 이루지 못한 채 꾸고만 사는데,
It's Ok 괜찮아 난 맛이라도 봤잖아.
다시 현실로 돌아가 그래 취직하고 잘 살아.
베이식,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가사 中.
꿈은 밥 한 술 내어주지 않을 만큼 비정하고, 혹여 한 술을 내어준다 해도, 맛만 보여주고 도로 뺏어가 버릴 만큼 냉정하다. 이루지 못할 꿈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꿈에게 돌아간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나를 아프게 할 걸 알면서도, 자꾸만 돌아가게 되는 전 애인 같은 존재다.
사랑에 후회가 없으려면,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된다는 말이 있다. 꿈도 똑같다. 꿈과의 이별에 후회가 없으려면 최선을 다해 꿈을 꿔보아야 한다. "이제는 생긴 거 같아, 마침표를 찍을 용기가. 끝나도 괜찮아,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 이 노래의 마지막에 나오는 가사 내용인데,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 그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이 노래를 끝까지 듣고 내게 든 생각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는 것."이었다. 꿈을 '꾼다'는 익숙하지만 꿈을 '한다'는 낯설다. 꿈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쉽지 않게 느껴진다. 우리의 꿈은 대부분 '잘' 해야 하는 거니까. 공부를 '잘' 해야 하고, 글을 '잘' 써야 하고, 그림을 '잘' 그려야 하고, 노래를 '잘' 해야 하니까.
현실 앞에선 꿈보다 밥벌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잘' 하려고 생각하면 아예 할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선 '그냥' 하는 것.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선 '다' 해보는 것. 그게 후회 없이, 미련 없이, 꿈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렵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