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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Feb 23. 2022

저는 대학생도, 취준생도 아닌 쭈굴쭈굴한 밥알입니다.

눈칫밥이 제 전문입니다만?


대학 졸업이 늦어지면서 나는 대학생도 취준생도,  어떤 쪽도 속하지 못한 무소속 백수가 되었다. 대학에서 학교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회사를 목표로 취준을 하고 있지도 않은 그런 상태다.


물론 졸업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안에 박혀 혼자 일하고, 통장에 입금되는 돈도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누구도 나를 생산적인 인간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스스로도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기분에 주눅이 많이 들어있었다.


용돈벌이라도 하자 싶어서 알바를 구하기 시작했다. '알바를 RESPECT!' 알바몬에 들어가 본다. 모집조건을 읽어본다. 이런, 나이 제한이 27살까지다.  살만 어렸어도! 여러 곳을 살펴보지만 28살은 알바생은 리스펙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괜히 서럽고 헛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까지도 취직을 못해서 알바조차도 여기저기 눈치 보고 구해야 한다니. 절망감에 빠져볼까 하다가 '눈칫밥은 원래  전문이야!!'하며 카페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다.


사장님들 눈에  나이 많은 알바생의 간절함이 보였는지  군데 모두 연락이 왔다. 그렇게 얼떨결에 내가 원하는 카페를 선택해 일을 시작할  있었다.


카페 일은 처음이었던 터라 배울  많았다.  교육담당은 나보다 6 어린 22 동생이었다. 동생은 새로 들어온 알바생이 자기보다 나이가 너무 많으니 난처해하는  보였다.


나의 22살을 떠올려봐도, 그땐 20 후반 언니들이 나이가 엄청 많아 보였으니  동생도 내가 얼마나 불편했을까. 어찌 됐던 그런 어색한 공기 속에서도 나의 교육은 시작이 되었다.


교육담당자 동생은 '유치원 열매반 선생님' 느낌보다는 '고등학교 부장 선생님' 느낌이었다, 흑흑. 그래도 옆에서 열심히 보고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바쁜 시간에는 내가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 동생의 눈치가 많이 보였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적당히 눈칫밥을 꿀떡꿀떡 삼킬  있었다. 그러다 눈칫밥에 목이 캑캑 막히는 결정적인 일이 생겼다. 사장님과 교육담당자 동생이 '다른 새로  알바생이 얼마나 일을 못하는지'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나도 새로 들어온 알바생 자격으로  자리에 있었는데! 키도 커서 거의 거인마냥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내가 적응을 잘해서 보호색을  건지, 아니면 적응을 못해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다. 눈칫밥 먹는  자신 있다 생각했는데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만 먹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어느새 한 달이 지나서 어느 정도 일을 능숙하게 해낸다. 교육은 끝나서 혼자 일을 하고, 교대할 때 30분 정도만 동생과 함께 근무를 한다. 그때 얹힌 눈칫밥이 아직 남아있어 동생만 보면 슬슬 눈치를 봤다. 나 일 못한다고 미워할까 봐 쭈굴쭈굴한 밥알같이 얌전히 있었다.


그런데 오늘 동생이 갑자기 초코과자를 건넸다. 발렌타인데이라고 나를 위해 초코과자를 챙겨온 것이었다! 너 나 미워하지 않았구나!! 얹혀있던 눈칫밥이 싹 내려갔다. 그러고 초코과자를 한 입 베어 무는데 너무 달고 맛있었다. 인정받으려 전전긍긍하지 말아야 하지만, 이번만 달콤한 인정의 맛에 마음껏 행복해 보려 한다. 역시 밥먹고는 디저트를 꼭 먹어줘야 되는 거였어!


202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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