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모래성, 허무한 죽음과 지겨운 삶

언젠가부터는 스스로가 너무 지겹게 느껴진다.

by 하준


Taylor swift_Nothing New


How long will it be cute all this crying in my room?
방안에 숨어 우는 모습을 언제까지 귀엽게 봐줄까?

When you can't blame it on my youth
더 이상 어리다는 핑계도 댈 수 없잖아.

How did I go from growing up to breaking down?
왜 어른이 될수록 무너져버리는 걸까?

And I wake up in the middle of the night
한밤중에 잠에서 깨.

It's like I can feel time moving
시간이 지나가는 게 매초 마다 느껴지는 것 같아.

How can a person know everything at eighteen
어떻게 어릴 적의 나는 모든 걸 알았는데,

but nothing at twenty-two?
어른이 된 나는 그 어떤 것도 모르게 돼버린 걸까?

Taylor swift_Nothing New


언젠가부터는 스스로가 너무 지겹게 느껴진다. 시간은 나를 빠르게 지나가는데 난 그 어떤 것도 해내지 못했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좋겠다고 글썽거렸다.


엉겨 붙은 생각들로 눈 감지 못 한 새벽의 시간은 천장을 울렁이며 거칠게만 흘러갔다. 거친 시간의 파동을 무슨 수로 피할 수 있을까. 난 그저 우는 모습이 한심해 보일 수 있다는 것 정도만 아는 어른이 되었다.


뭐든지 겁 없이 해보고, 부딪히며 배우고, 또다시 도전하던 어린 시절의 나. 울고불고 하면서도 꿋꿋이 버텨오던 그 어린 나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나만의 모래성을 쌓았다.


파도 한 방이면 무너질 모래성이라는 걸 알면서도 개의치 않았다. 그냥 모래성을 쌓는 게 즐거웠으니까. 언제든 또 다른 모래성을 쌓을 수 있음을 알았으니까.


그런데 왜 지금의 난 아무것도 모르는 걸까. 모래성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슨 모양으로 쌓아야 하는지, 그 어떤 것도 모르겠다. 어른이 된 내가 아는 거라곤 파도가 치면 모래성은 무너져버린다는 사실뿐이다.


어차피 사라질 모래성을 왜 쌓아야 하는지, 어쨌든 죽어버릴 인생을 왜 살아야 하는지 하며, 그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는 허무한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어쩌면 난 이미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아니, 어쩌면 혼자 방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는 난 아직 어른'도' 되지 못한 걸까.


허무한 죽음과 지겨운 삶 중 어떤 게 더 나은 걸까. 모든 걸 알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고요히 그녀의 대답을 떠올려본다.


모래성이 사라져버리는 건 허무한 죽음보다는 편안한 숨과 더 닮아있다. 그건 파도가 왔다 가는 것처럼,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모래성이 완성되지도 못한 채 무너지거나, 혹은 완성된 모래성이 생각과 다르게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그건 아이든, 어른이든, 잘났든, 못났든,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일이기에.


충분히 아쉬워하고 속상해하다 다음번엔 다른 방식과 모양으로 모래성을 쌓으면 된다. 그게 색다른 삶을 사는 방식인 것이다. 애써 덤덤한 척하며 '이젠 안 해.'하고 뒤돌아 슬퍼하면 지겨운 삶이 된다.




And will you still want me when I'm nothing new?
내가 새로울 게 없어도, 계속 나를 사랑해줄래?




근사한 모래성을 지어야만 '새로운 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래성의 모양은 만들 때마다 매번 달라진다. 똑같은 모양의 모래성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모래성을 쌓는 걸 멈추지만 않는다면, 나는 늘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색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아직은 해내지 못했지만, 모래 한 줌 일지라도 난 매일 나의 모래성을 쌓아가고 있다. 그런 나를 난 여전히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