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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Feb 20. 2022

청력은 떨어졌지만,

그냥 '아,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애인이랑 헤어졌다고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할 일을 하지 않고 한 달 남짓한 시간을 낭비했다. 마감일은 코앞에 닥쳤고 이번에도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와 압박감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가슴을 눌러서 잠을 청하기가 힘들었다. 뒤돌아보지 말고 지금만 바라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는데 소용이 없었나 보다.


스트레스는  알량한 눈속임 같은 위로에  하나 깜빡해주지 않는다. 어제부터 귀가 먹먹하더니 마치 물속에서 소리를 듣는 , 웅웅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로 아픈 몸을 방치했다가 크게 휘청했던 적이 있어, 오늘은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그냥 경미한 염증이 생겼겠거니,  먹으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다.


의사선생님은 고막에는 문제가 없다며 혹시 모르니 청력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검사를 받았는데, 고음 영역에서의 청력이 평균보다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냥 '아,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멍해 보이는 내게 의사선생님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약을 먹어보고 경과를 보자며 오히려 나를 따스히 걱정해 주셨다.


청력검사비용으로 3만원 정도를 지불하고 '아, 비싸다..'하며 저벅저벅 약국으로 갔다. 약사선생님은 이랬던 적이 자주 있냐며 또 나를 걱정해 주셨다. 커피도 줄이고 잠도 푹 자야 한다며, 저녁약에는 신경안정제가 들어있으니 졸릴 수도 있다고 하셨다. 커피중독자인 나는 속으로 '커피는 포기 못 해..!' 외친다. 약사선생님은 이게 한 번에 잘 낫지 않고 다시 또 웅웅 거릴 수가 있다며,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잠은 꼭꼭 푹 자야 한다며 다시금 나를 다독여 위로해 주셨다.


의사선생님과 약사선생님의 마음에 비해,  자신은 내가 아픈 것에 이상하리만큼 무감각했다. 스트레스로 자꾸만 몸에 염증이 생기니 그냥 무뎌져버렸다.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매번 그러지 못하니 무기력해졌다. 반복에 반복. 이런,  우울한 무의식의 늪에 빠지고 있다. 이러면  .


신경안정제의 약효가 도는지 잠이  끌어당긴다. 오늘은 아픈 핑계를 대서  자볼까 하지만,  핑계만 댄다며 부리나케 스트레스가  튀어나온다. 이렇게 동정심 따위 찾아볼  없는 냉혈한이 스트레스란 녀석이지만, 약의 힘을 빌려 소근이 부탁해 본다. 


'오늘은 내가 마음이 조금 지쳤어. 그러니  오늘 밤만 걱정 없이    있도록 나를 도와줘.'


베개가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스트레스도 자신이 완전히 나쁜 애만은 아니라며,  부탁을 조용히 들어준다.


고마워, 내일은 또 같이 할 일을 해나가보자.

오늘은 잘 자.


22.02.10.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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