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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아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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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Mar 21. 2022

폭주하는 기차처럼 나는 분열되고 있었다.

시간표를 어떻게든 지키려고 스스로를 태우며 미친 듯이 폭주하는 기차였다.


세상의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는데,

나의 시간만 멈춰 있었다.


무언가를 하고는 있는데

이렇다 할 만한 건 없었다.


바빠야 할 일이 아닌데

바빠야만 할 것 같았다.



인생이라는 기차가 있다면,

난 내 인생이라는 기차에 타고 있지 않았다.


스스로가 곧 기차였고, 자아라는 게 없는 사물 같았다.

내 생각과 감정 따위는 없었다.


시간표를 어떻게든 지키려고

스스로를 태우며 미친 듯이 폭주하는 기차였다.


머리는 매연이 들어찬 듯,

불안, 우울,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했다.


심장은 기차가 덜컹거리듯,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덜커덩거렸다.


빠르게 달리는 기차가 분열되어 보이듯,

나 자신도 분열되고 있었다.



기차표를 끊었다.

5시간이 넘게 가야 하는 느린 기차였다.


책을 챙겼다.

김연수 작가의 '시절일기'.


코로나로 인해 옆좌석이 빈 채로

홀로 조용히 책을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다가,

창밖의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봤다가,


그러다가 또다시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을 메모하고 그랬다.


너른 들판이나 푸르른 강을 지날 때면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캄캄한 지하차도나 터널을 지날 때면

고개를 돌려 책을 읽었다.


책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밝은 빛이 창 안을 가득 채워왔다.



인생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만 지나는 게 아니라,

지독히 어둡고 지겨운 풍경도 지나야 하는 거였다.


인생은 내가 보고 싶은 풍경만 오래 붙잡지도,

내가 보기 싫은 풍경을 빨리 감지도 못하는 거였다.



그 시절의 나는 터널을 지나치지 않고

어딘가에 닿기를 바랐고,


결국 터널 안을 지나고 있을 때는

영원히 터널에 갇혔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의 일기는 탈옥을 시도하는 죄수처럼

절박하고 위험했다.


숟가락으로 시멘트 바닥을 벅벅 긁듯

한심하고 애처로웠다.



나는 멍청하게도 터널만 지나면 될 걸

나 스스로를 감옥에 가뒀고,


내가 만든 감옥을 탈출하는 데

터널을 지나는 시간의 배를 써야 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검사가 되어

먼지 한 톨까지 쥐잡듯 뒤졌고,


그러다가도 변호사로 바뀌어

내 잘못을 변호하느라 밤을 새워야 했다.


날 억울한 죄수로 만든 판사도 나였고,

내 억울함을 무죄로 풀어준 판사도 나였다.



긴 시간을 들여 감옥을 나와 기차를 타고 있다.

창밖을 보니 지금 난 터널 안에 와 있다.


일상은 터널의 반복된 장면과 같이 매일이 비슷하다.

무언가를 그리고, 무언가를 쓰고, 무언가를 읽는다.


이 지루한 일상의 반복은 지겨워 보일지라도,

실은 지겨운 터널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긴 터널에서

고개를 돌리게 해주는 건, 매일매일의 일상.


그 일상으로의 집중과 몰입인 것이다.



더 이상은 터널을 피하려고

기차를 멈추고 나를 가두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은 터널이 두렵지 않다.

터널은 지나치는 것뿐이란 걸 아니까.


그저 고개를 돌려 다시 책을 읽는다.

일상으로 돌아가 매일 그리고, 쓰고, 읽는다.


이 시절은

어떤 그림으로, 어떤 글로 남게 될까.


저 멀리 터널의 끝에선

빛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이 터널의 끝에는,

어떤 아름답고도 평화로운 풍경이 나를 기다릴까.


인생이라는 기차여행을 즐기는 법을

조금씩 천천히, 느리게 알아가는 이 시절이 난 좋다.


2022.03.17의 시절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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