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시인의 이 한 줄이 나의 수많은 글을 없앴었다.
지난날은 잊고 나아가라.
나에게 하는 말. 그리고 당신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그것이 성공이었든 실패였든
그것이 아픔이었든 행복이었든
보다 초연하게 또 앞으로 나아가서 또 성공을 쟁취하고, 더 행복하고
마치...(중략)...
그렇다 결국 류시화 시인의 한 줄에 또 귀속이 되어 버린다. 윤동주의 서시와 별 헤는 밤은 읽을수록 우러나고 그 시대의 모든 시대상황, 그리고 묵직함을 가져온다. 메밀국수 먹을 때마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이 생각나 어김없이 밤이 되면 흐붓한 달빛을 찾게 된다.
시인은 내 삶을 지배한다. 지나가다 본 이름 모를 시인의 글귀가 내 평생 나를 괴롭힌다. 평생 도그마에 갇혀 사는 것을 증오하면서도 시인의 글귀에는 사로 잡히게 된다.
그들의 가난한 삶이, 성공해서도 가난하게, 또 더불어 살려고 하는 아름다움이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그렇게 나는 시인이 미울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잘 만들어진 건물에 조그만 흠집이라도 찾으면 전체가 잘못된 것처럼. 마치 멋진 전체 요리 한 접시에 파리를 넣은 것처럼 증오하게 만드는. 또는 아무리 잘 만든 요리라도 머리카락 나오면 전체 요리가 문제인 것처럼 말하기 따라 상황을 왜곡되게 보게 만들 재주가 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공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의 문장 한 줄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자신이 죽고도... 그것이 남는다. 그리고 시간조차 뛰어넘어 이름 모를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전달한다.
아아... 나는 무엇을 만들었던가? 꼭 더 낫다는 것이 뭘 의미하지는 알지 못하지만 보다 나은 삶은 걸음마를 못 하는 사람이 다시 못 걷는 순간까지 염원하는 것이겠다. 그래서 원한다. 조금씩 나아지는 삶을. 그러나 나의 인생은 시인의 단 한 줄의 문장보다 나은 삶인가? 나은 삶이련가?
그렇다. 누가 인생의 진리를 찾아 문장으로 기록했다고 해서 나도 이용 못할리는 없다. 발견자의 이름만 기억하면 된다. 삶의 정수를 담은 글을 캐내는 광부들의 노고를 잊지만 않으면 된다.
그래서 사랑하겠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