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 던지는 노인
요즘 자주 다니는 곳이 특정 지역 학원 상가 건물 안에 있는데, 엘리베이터 타면 늘 아이들이 있을 정도로 어린이 천국이다. 수학 학원, 영어 학원, 줄넘기 학원, 피아노 학원, 로봇 만드는 학원 등 상가 건물 대부분이 학원으로 되어 있다.
나는 여기 공용 화장실을 자주 이용하는데, 여름이라 그런지 늘 동물의 몸에서 물질대사를 거쳐 생긴 노폐물(오줌) 찌릉내가 내고 지나다니는 손을 씻으면 무조건 물이 튀었다. 비누는 말라비틀어진 채로 수개월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다. 조절 밸브는 세부 조정 하기 힘들게 뻑뻑해서 살살 틀기는 힘들었었거든. 나는 두 달간 아이 깨끗해 10개와 스프레이식 향수 2통, 그리고 변기 청소를 위한 치약 10개 정도를 써서 한 실험 결과를 여기 기록한다.
우선, 화장실은 더 이상 냄새가 안 난다.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고 온도는 그대로인데 뭔가 청소 방식이 달라진 것 같다. 그리고 손 씻는 곳에는 실리콘 물 가림막을 데어 놓았는데 한 달쯤 지나니 수압 자체가 내려져 있어서 더 이상 옷에 물이 튀지 않았다. 그간 아이들에게는 그 물이 얼굴에 튀었다.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면 어김없이 손을 씻는 아이들을 본다. 아이 깨끗해는 집집마다 있을 것 같았는데, 그냥 그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손을 씻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직접 해보면 알겠지만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뿌듯하다. 그러나 그동안 나도 간간히 화장실을 가면서 몰랐었는데, 정말 많은 사람이 왔다 가는지 1일 혹은 이틀 만에 아이 깨끗해는 동이 나 버렸다. 그렇게 한 달 실험 후에는 아이 깨끗해 리필 대용량을 사서 주입했고, 그 뒤에는 그냥 비누를 새것으로 놔둬 보았다. 깨진 유리창 이론의 반대처럼... 거짓말 같이 비누 사용량이 올라가서 지금은 비누곽을 더해서 3개를 가져다 놓았다. 이 건물에는 아침 일찍 올 수 있었고, 사람들이 화장실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약 1~3시 전 전에 뭘 해 놓을 수 있었다.
냄새가 날 때 스프레이 방향제도 썼지만 치약이나 물비누, 세제를 변기 청소에 쓰기도 했다. 비록 공용이긴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처음 그 불쾌도의 화장실은 아니었다. 학원 상가다 보니 하원 시간이 되면 수많은 학부형을 마주친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왠지 그 앞에서 스스로 당당해지고 뿌듯함도 있다.
어찌 보면 혼자만의 상상이고 혼자만의 뿌듯함일 수도 있으나. 이런 작은 변화를 직접 느끼는 것은 언젠가 혼자서 외로울 길을 갈 때 스스로에게 위로가 된다고 말하고 싶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지나간 일보다는 최근 일을 말하고 싶다. 내부 고발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2건이 있는데 역 하인리히 법칙처럼 이런 일이 한 둘이랴? 물론, 지금의 이야기를 하며 예전 이야기도 적으려고 한다. 세상이 어찌 늘 아름답기만 할까?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한 번은 좀 오버해서 장미꽃 비누와 거치할 수 있는 거치대를 사서 세면대에 가져다 놓았는데, 그게 녹아내려 무슨 피처럼 세면대를 적셨다.
청소하시는 분도 처음 이틀은 깨끗하게 치워 놓으셨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완전히 치우셨다. 내가 발견한 건 이틀 째였고, 원인은 물을 세면대 거울 쪽으로 튀기는 사람 때문에 그 현상이 발생했다. 공용 화장실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모두가 조용히 손을 씻지는 않을 테니.
나는 위에서 말한 제품(아이 깨끗해, 스프레이식방향제, 비누, 치약, 세제, 등...)을 만드는 사람들이 참 고맙다. 나에게 좋은 사회 실험과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예산 문제로 비누만 가져다 놓았다. 처음 말라비틀어진 비누도 처음엔 깨끗한 화장실의 과정을 거쳐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을 처음 짓고는 모두 깨끗했을 테고 냄새도 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수년 전, 우리 아파트 통장에 14억 정도가 있었는데 오늘 관리비 명세를 보니 이제 7억 정도 남았다. 그간 관리 소장도 바뀌고, 마음에 들지 않는 돈 씀씀이에 쓴소리도 왕왕하곤 했지만. 위에서 말한 사각지대처럼 또 이런 울타리 안에서는 아파트 돈을 쓰려고 하는 수많은 사람을 본다. 내 지인은 어느 순간 찾아온 사람이 건물 감사를 시켜 달라고 해서 감사를 시켜줬는데 이래저래 싸우더니 소송 걸었다가 지금은 그 건물을 꾀어 차 버렸다. 재미있는 건 나도 구분 소유자고 지인도 상가 주인인데 그 건물에 아무런 연관도 없는 놈이 들어와서 매달 수백만 원씩 고정비를 가져가는 놈이 되었고, 나머지 요직도 본인이 다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는 건 지인도 나처럼 더 이상 남들을 위해서 뭘 하지 않는다. 그들을 위해 관리비 한 푼이라도 절약하게끔 하려고 일선에서 싸우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소송비만 수천만을 쓰고 무죄 선고를 받긴 했지만, 모든 힘이 빠져버렸다. 나는 대기업이 아파트 하우징 사업을 담당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돈이 된다. 헤쳐먹기도 좋다.
이 글은 어디선가 작은 선행을 하는 분이 또 글을 써 주십사. 또 열심히 살고 소송으로 힘들어하셨던 그분을 위해 또 나를 위해 써 둔다. 다시 이런 작은 일부터, 또 작은 변화부터 보자고 말이다. 탈무드의 불가사리 던지는 노인처럼, 난 아이들이 손 씻는 것을 보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불가사리 던지는 노인
멕시코 해변에서 어떤 노인이 불가사리를 주어서 바다로 던지고 있었습니다. 지나는 사람이 궁금하여 물어보았습니다. "왜 불가사리를 바다로 던져요?" 노인이 대답했다. "밀물에 밀려온 불가사리들을 지금 바다로 던져 넣지 않으면 말라죽기 때문이죠." 그러자 다시 물었다. 이 수많은 불가사리를 다 던져 넣을 수도 없는 무의미한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짚어서 바다로 던진 저 불가사리에게는 큰 의미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