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JH Mar 26. 2021

[소설] 100조 원의 사나이_2

으따따따따따따따따, 우으이따따따따따따따따


"오빠 벨소리 특이하네"

김은누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받을 필요는 없었다.

 

"잠깐만,... 너 전화기 없이 손으로 전화받아봐."

"이... 이렇게?"

진솔이는 주춤하더니 이내 아령으로 이두근 운동하는 것처럼 고양이 손을 하고 오른쪽 귀에 갖다 대었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새끼손가락을 펴고 이렇게 하는 거야."

진솔이 손을 잡고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만 펴고 나머지는 구부린 형태로 만들어 주었다.

"너희는 스마트폰만 쓰니 진짜 전화기 모양도 모르지.

"특이하네"

제시는 내 고정이다. 이제 이 가게에서 내가 찾는 사람은 제시 밖에 없다. 유일하게 이진솔이라며, 본명을 알려준 친구이다. 본명을 안 믿으라고 하니, 나중에는 주민등록증까지 보여주었다. 특이했다. 


"우리 시절엔 전화기 모양도, 벨소리도 거의 하나밖에 없었어. 그런 전화기가 지금은 오히려 특이한 물건이 되어 버렸지."

"전화기가 없던 세상에 살던 사람이 보면, 다 특이해 보이겠네?

제시는 특이하다는 말을 자주 쓴다. 


"백 대표님 여기 계셨군요! 내가 걱정이 되어서 홍사장에게 물어봤어요. 어이쿠, 술 많이 드셨네."

김기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냥 눈이 좀 감기는 것뿐입니다."

"아무튼, 저도 왔으니 고민 있으면 털어놓으시고 천천히 드세요. 그런데 오늘 진석 씨는 없나 보네?"

"제시, 홍사장한테 술 새로 달라고 해"

키핑 해 놓은 술이었기에 별로 마시지도 않았지만 난 눈을 게슴츠레 뜨며 알딸딸한 척했다.


"최종 면접은 16명입니다."

"어, 그래. 의자 5명씩 세팅하고 고 팀장하고 서 부장, 우 상무 불러. 그리고..."

난 서류를 위쪽만 보이게 쭈욱 펼쳐서 빠르게 훑어보았다. 서울 과학고, 서울대 화학과 출신의 지원자가 보였다. 

"그리고 미지 씨, 김진석 이 친구는 마지막에 혼자 면접 볼 수 있도록 하고 끝나는 시각 기준으로 1시간 뒤로 맞춰. 면접 끝나면 바로바로 돌려보내고"

미지 씨의 일 처리는 항상 칼 같다. 자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대부분 아는 듯했다. 서류는 훑어보고 캐비닛에 넣었다. 나도 이렇게 기업에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대부분 정보 저장소, 데이터베이스를 담당했었지.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원자 정보를 따로 저장해서 가지고 있는다. 말로만 지원 후에 정보를 파기한다고 하지 결코 지우지 않는다.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쓴 후, 해당 사진의 링크 주소를 따로 저장하고 블로그 글을 지우면, 몇 년이 지나도 그 사진 링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빅데이터로 이용해야 할 사진을 지울리 만무한 것이다. 헤드 헌터들도 기업 지원하게 해 준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이력서만 수집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정확한 개인 전화번호 및 집 주소까지 알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서울대 지원자가 눈이 뜨인 이유는 컴퓨터 공학이나 컴퓨터 과학 혹은 컴퓨터 관련 학과가 아니면서 여기 지원한 것이나 대치동 학원 강사 7년 이력, 과학고 조기 졸업, 3년 간 해외 거주 이력, 37살의 나이 그리고 집주소를 서울로만 적어 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 친구라면 분명 우리 회사에 등록된 개인 계좌를 해킹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해킹이라기보다는 간단히 자신의 계좌로 송금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 맛을 봤으니 대치동 학원 강사를 했을 것이고, 한 때는 잘 나갔겠지만 1년간 IT 학원을 다녔다는 것은 어떤 사건이 있었거나 퇴물이 되었다는 증거다. 다른 회사를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지금 여기 지원했다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이력이다. 이전 회사에서 잘 나가는 IT 회사 초봉에도 못 미친다는 것은 자존심도 한 번 꺾었다는 것이겠지. 


"네. 일부러 따로 배정한 겁니다. 사람인에서 지원자 수 보셨겠지만, 그중에서 정예인력 15명이 이미 다녀 갔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마지막에 면접 보는 것은..."

면접 내내 마치 본인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IT 경력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지만 백그라운드를 볼 때 특이하게 튈 사람은 아니니 고객 계좌 관리를 담당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사실 일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이미 잘 되고 있는 시스템이라 천천히 소스 파악하면서 운영되는 것 보시면 돼요. 만약을 대비해서 인력을 충원해 두는 것입니다."


한 시간 전, 

15명 면접이 끝나고 고 팀장이 말했다.

"저는 바빠서 갔다가 한 시간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개발실은 항상 바쁘군요. 그렇게 하세요."

고 팀장이 나간 후, 우 상무가 입을 열었다.

"인사부 서 부장이나 저나 데리고 있는 사람들 인건비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개발실은 연차에 비해 인건비가 너무 많이 나갑니다. 아니, 서버를 운영하는 운영팀이 회사에 가장 중요한 인재들인데 그들 보다 1.5배나 많습니다. 대표님."


서 부장이 말했다.

"상무님, 개발실은 근속연수가 많지 않은 것은 알고 계시죠?"

"아니, 근속연수랑 인건비랑 무슨 상관인가요. 오히려 근속연수가 낮은 팀이 인건비가 낮아야죠"

"상무님, 개발실 보안이 뚫리면 고객들이 가지고 있는 돈이 다 날아가는 것은 알고 계시죠?"

"서 부장님은 항상 질문하는 식으로 이야기만 해요. 곳간 키를 쥐고 있는 것은 저희 팀입니다."


사람 관리는 머리가 아팠다. 회의 자리가 되면 항상 직원 처우에 대해서 불만이었다. 사실, 고 팀장에게는 이들이 말한 것보다 더 주고 있었다. 이사회에서 정해 놓은 직급별 연봉에 평가 별로 줄 수 있는 상여금도 모두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고 팀장을 잡아 두려면 사비로 월급을 더 주어야 했다. 그만큼 고 팀장의 역할은 컸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 사회가 원하고 안전해 보이는 길을 따라갈 뿐이었지만 고 팀장은 본인이 선택한 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실리콘벨리라는 이름이 지금처럼 알려지기도 전에 실리콘벨리에서 아무런 백그라운드 없이 개발자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아트 코인을 만든 것도 오롯이 그의 힘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언제나 대체 가능한 인력이었다. 나 이외에 다른 사람 의견을 듣지만 그 말을 무게는 각자 다르다.


"다들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모두 저와 함께 하는 전우이시니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irreplaceability 가 제가 추구하는 인재의 방향입니다. 회사에서 우리가 정해 놓은 것과는 다르죠."

"아니 대표님 운영팀이야 말고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죠."

우 상무가 데려온 석팀장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을 해 주어야만 했다.

"irreplaceability를 가진 사람은 우리 기업에 들어와서 운영 쪽 서버 담당하시는 분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회사에서 운영하는 분들은 서버 비밀번호 가지고 있고 다른 부서에서 협업 요청을 제대로 도와주지 않으면서 질질 끄는 것이 대체 불가 인력으로 만들고 본인들이 그런 인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럼 운영 인력이 갑자기 빠지기라도 하면 어쩌실 것인가요? 그걸 대체할 인력은 있는 겁니까?"

"인수인계 잘하면 됩니다. IT 회사가 특히 인수인계가 안 되는 사실은 잘 알고 있어요. 퇴직금 중간 정산 퍼센트 정해서 그걸로 인수인계 여부만 확인해도 서버 비밀번호나 내부 운영 노하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퇴직금, 혹은 한 달 월급보다 서버 비밀번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인수인계 기간을 한 달로 잡아 놓은 겁니다. 갑자기 튈만한 인력들은 아예 배치를 하지 않고, 그런 인력이 보이면 미리 부사수를 뽑아 주는 것 같이요."

"대표님 말씀대로 평균 임금은 낮지만 운영팀은 서버 파트를 제외하고 야근이 없는 부서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서버 파트는 3교대로 돌아가니 연봉은 다들 고생하므로 평준화해야 한다는 상무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세요. 제가 오늘 운영팀장 안 부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운영팀이 펑크 내면 회사가 망할 수 있기는 합니다. 얼마 전 디도스 공격을 받은 경우 회사 신뢰도가 나빠져서 고객 유출이 많이 일어났죠. 그런데 제가 서버팀에 공격자 IP 로그를 달라고 했는데 안 줬잖아요? 윈도던 맥이던 리눅스던 고 팀장이 서버 물리적으로 접근해서 다 뚫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저도 개발자니 알지만 파일 시스템만 알면 마운트 해서 파일로 되어 있는 DB야 쉽게 뺄 수 있습니다. 그때 고 팀장에게 제가 따로 부탁해서 줬는데 서버 이상 요청 흔적 없더군요. 사용자 수나 트래픽을 고려해서 운영을 하고 문제가 있을 것 같으면 다른 부서에 요청해야 하는데 왜 그걸 못합니까? 오토스케일 적용되었다고 하더니 메타 데이터 달라고 하면 그런 것 없다고 하며 그저 복잡한 시스템 관계도나 그리고,... 우선, 내부적으로 이원화 팀을 둬서 스위칭하려는 이유도 그겁니다. 팀 인수인계 끝나면 본 팀은 전체 한 달 휴가 가게 하고 운영이 제대로 되는지 보려는 것이죠. 아무리 똘똘 뭉쳐 있다고 해도 고객 불편은 휴가를 망칠 테니까요. 그리고 내부에서 그 정도 정치는 안 해도 운영팀보다는 오히려 법무팀이 더 신뢰가 갑니다. 제 눈에는 월급 받는 사람들이 고객 불편을 걸고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 개인은 소송비 감당하기도 힘들테니 관련해서 정기적으로 교육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신뢰하는 사람은 이런 동료들보다 오히려 제시다. 말은 퍼져나가기 마련이고 또 덧붙여지고, 내 생각을 알면 아마 우 상무나 석팀장은 더욱 끈끈한 정치 동료가 될 것이 뻔했다.


"개발실은 사실 개발이 끝나고 나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근속연수도 낮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나오면 또 기술이 바뀌고, 그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면 외주나 다른 사람을 뽑아서 써야 하니까요. 요즘엔 세미나나 인터넷 강의도 되게 비싸던데 회사에서 지원해 주지는 않으니 모두 이해를 합시다. 제가 좀 더 고려해 보겠습니다."

합격을 축하합니다.

"아니, 운영 쪽 경력 사원이 사원 연봉을 갱신했다고?"

"쉿, 이거 너만 알고 있어.  2억 이래."

"와 진짜?"

"응, 이번에 삼성에서 쿠팡 간 친구가 삼성 보너스 포함해서 2배 책정했다던데, 2억이었데. 인사부에서 센싱 해서 거기 맞춰줬다고 하더군"

매거진의 이전글 예상이 정확히 적중했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