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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H Mar 31. 2021

[소설] 100조 원의 사나이_3

2500억

통장에는 2500억이 있으니 190억이 더 들어온다고 해도 큰 감흥은 없다. 다만, 190억은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유희였다. 30억을 자기 지갑으로 송금시켜 놓고 뻔하게 해킹이라고 주장할 거래소 직원의 마음은 이미 그 간 행동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해당 송금 API는 내가 Indirection Layer를 만들어 암호 지갑 파라미터를 변경할 수 있었다. USB 타입의 하드웨어인데, USB 꽂아서 해당 경로가 인식되면 내가 만든 API를 끌어 쓰는 방식이라 USB 뽑으면 그만이었다. 즉, 쉽게 말해 송금 기능을 쓰면 내가 중간에서 지갑 주소와 금액을 바꿀 수 있는 방식이었다. 해당 직원의 범행 CCTV는 확보해 두었다. 애초에 로그는 송금 기록으로 남지만, 훔친 직원이 나눠서 송금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술자리에서는 적당히 정보 추려서 김은누 기자에게 해킹 사실을 말해 두었다. 오늘 출근하지 않은 그 친구는 내일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마 김은누 기자의 단독 뉴스를 보고 의아해하겠지만 30억은 이미 다른 거래소를 통해서 현금화한 것을 확인했다.

"백사장, 그 ㅅㄲ 차라리 마약쟁이였으면 안 잡힐 텐데 말이지."

정민이가 말했다. 이제 정민이도 나에게 들은 게 많아서 비트코인은 마약 거래가 기반 산업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 그 친구 코인으로 딱히 뭘 할 건 없어서 빠르게 현금화할 줄 알았지."

"근데 저 ㅅㄲ 술 많이 먹었는데 내일 기사 내는겨?"

"몰라, 내일 내던 모레내던. 수습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아마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마치 지가 정의의 사도인양, 대신 결정을 내려준 것처럼 기사 낼 거야."

"큐핰! 하기사 백사장도 타격 있다고 생각할 테니 손절하겠지"

"내가 귀찮을 일은 없어, 이사회 통해서 저번에 등기 이사 바꿔 놓았으니 한 대표가 고생 좀 하겠지."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전자산업진흥회에서 담합을 논의하듯 3대 암호화폐 거래소 대표들은 따로 모임이 있다. 우리는 그 모임의 이름을 1조 클럽이라고 지었다. 아직 1조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곧 그렇게 될 셈이었다. 시작할 때 서로의 자산을 2500억으로 맞추고 시작하였다. 마치 금융실명제(real-name financial system)처럼 우리는 서로의 자산을 빤히 알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은 우리 외에 다른 사람은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시스템은 계속해서 암호 화폐를 찍어 내고, 거래소를 통해 현금화한다. 스테이킹을 통해 거래소로 맡겨지는 암호 화폐 금액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1조 클럽이 한 번에 움직일 수 있는 금액은 커지고 추적은 불가능해진다. 3만 개의 전자 지갑을 보유하고 있고 수수료가 무료기 때문에 지갑들끼리 지속적으로 자가 거래가 되고 또 투자가 되도록 해 놓았다. 딱히 그 지갑에서 돈을 찾을 필요는 없다. 거래소를 통한 투자도 그 날 거래규모가 작은 코인을 선택해서 프로그램 거래가 된다. 이는 합법적인 수수료를 발생시키고 해당 코인이나 토큰의 거래량을 유지시켜 준다.

"그런데 백사장 진짜 돈 얼마나 있는겨?"

"얼마 없어. 그게 뭐가 중요해 돈 찍어 내는 사람한테"

"그랴... 크큿, 그런데 김기자 그 ㅅㄲ 기사 내면 회사 망하는 거 아녀?"

"뭐래, 우린 아직 중견기업이야. 국내 대기업들 국민들 신상정보 털리고 제대로 벌 받는 거 봤어?  제대로 사과하는 거 봤냐고. 걔네들이 터 놓은 길 이용해야지. 이 해킹이나 저 해킹이나 똑같아. 내가 이럴 줄 알고 이름 있는 보안 업체 쓴 거잖아. 그런데 그 업체 관계자들 죄다 서울대, 카이스트라서 나중에는 어려운 기술 이름 대고, 쉬쉬하며 묻힐 거야."

"어따... 뭐 백사장이 알아서 하겄지. 그나저나 제시랑 떡 안쳐도 되는가?"

"오늘은 오피스텔 가려고, 애들 월급값은 받아야지"

"참 백사장 머리도 좋아. 회사 돈으로 오피녀 월급 주고 한 번씩 물 주러 다니니께."

"후후, 내 머리가 아니고 그냥 포스코 사거리에서 배운 거지. 졸부 ㅅㄲ들 다들 그렇게 하더라고"

"크큭, 하긴 뭐 그렇게 달달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사이니께 내 가게 오면 다들, 오랜 친구들보다 더 친한 척하재 그런디 그 ㅅㄲ들 주변 사람은 좀 챙긴댜?"

"챙기긴 뭘 챙겨, 다 개ㅅㄲ들이니까 잘 사는 거지. 10년 우정도 포르쉐 싸구려 모델 하나에 팔아 버려. 그런데 그 쉐리들이 나쁜놈 취급 받는 적은 없지. 집, 차, 시계 지들 월급으로는 못 살 수준준으로 하고 인스타로 이미지 관리 좀 하면, 저~어~어~어~어~기 2군에 있는 ㅅㄲ들이 돈 냄새 맡고 알아서 나한테 귀찮은 동료들 목 쳐주거든. 서로가 지옥을 만들지 행동 패턴이 뻔해."

"고거시 이이제이구만? 근디 사람 ㅅㄲ들이 다 생각대로 되는가 조심혀"

"한 번씩 ㅆㅂ 내부 고발하는 도라이 ㅅㄲ들 있는데 어차피 다들 살기 바빠서 그런 기사 안 봐. 오히려 힘든 것 잊으려고 사랑 노래 듣고 웃긴 프로그램만 보지. 그리고 뭐 폭로하네 뭐하네 하던 그 ㅅㄲ들 중에 잘 사는 사람 없어. 우리나라 독립투사 후손들 봐봐. 오히려 민족 반역한 ㅅㄲ 들 애새끼가 더 잘 살지. 정의 구현했던 놈들 애새끼들이 니 가게 일하러 오게 되는 방식이란 말이여. 그래서 오피 년들이 좋아. 성병도 걱정되기도 하고"

"어따... 백사장 날 뭘로 보고. 알면서 떠보는겨? 백사장 찍은 애는 2차 안 보내지. 근데 제시는 어디가 그리 좋은겨?"

"그냥 제시 눈 보면, 불행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아서. 옛날 생각나네. 아무튼, 한 동안 가게 못할 테니 여기 80억 받고 애들 관리 잘하고. 보너스로 생기 좀 넣어. 제시는 에르메스 신상 하나 사 줘. 힘 있는 ㅅㄲ들은 어차피 집에 돈도 많아서 이 가게 아니면 비즈니스가 안 돼. 나 스위스에 좀 다녀올게. 한 달 뒤 각본 하나 토렌트로 보낼 테니까 배우들 일정 관리 좀 해 주고"

"어따 백사장 예고편 때리는 게 예술이네 크크. 이번엔 또 무슨 작품인겨 벌써부터 궁금하구먼"

"별거 없어 1조클럽 애들끼리 각본 만들어서 싸우기로 했거든. 그리고 각자 해외 유명 보안 업체 계약 따오기로 했고. 국내 보안 기술 발전에 이바지해야지. 그리고 법무팀 애들도 일거리 좀 줘야 해. 바깥 싸움을 안 붙이니 ㅅㅂ 자기 식구들 괴롭혀. 자꾸 회사 솔루션 불편하게 만들던 보안팀은 이번에 다 날아갈 텐데. 법 다루는 ㅅㄲ들도 자꾸 자기 애들 괴롭히는 기획만 들고 와서 개발팀 불만이 많더라고"

언제 또 와?

가게를 나설 때 제시가 물었다. 제시랑 오래 있었기에 가슴이 몽글몽글 했는데 취기가 올라와서 윗 가슴까지 떨렸다. 제시의 깊은 눈과 도톰한 입술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안 죽으면 와야지."

제시가 한 팔을 뻗어 내 어깨에 올렸다. 쇠골 위쪽 옴푹 들어간 부분을 엄지 손가락으로 누르며 눈 앞까지 다가왔다.

"특이하네"

제시의 맑은 눈에 비친 내 얼굴이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생각대로 돌아가는 세상인데 달콤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쓴 맛의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It is what it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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