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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Aug 14. 2017

secret sunshine(밀양)


secret sunshine(밀양)





 돌부리에 걸린 버스가, 오늘만 해도 수차례라며 대수롭지 않게 덜컹거림을 토해낸다. 시골은 길목마다 나무 그늘이어서 한 여름 햇살이 버스 안을 들었다 나갔다 바쁜데, 마침 햇살이 든 때였다. 엉덩이들은 들썩 거렸고, 햇살은 남아 있는 자리가 없어서인지 혼자서 겨우 중심을 잡는다. 맨 뒷자리의 나는 눈썹 사이를 잔뜩 찌푸렸다. 도시 지하철의 날렵함이 그리웠던 것은 아니지만, 돌멩이 하나 이기지 못한 버스 치고는 너무도 당당했기 때문이다. 버스 안 어르신들이야말로 괜찮가 보다. 아무리 눈에 익은 길이로서니 돌부리가 미 법도 한데, 앞좌석 손잡이를 꼭 쥐어 보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표정을 지다.

 그때 회색 양복에 회색 중절모까지 차려입 할아버지 검은 봉다리 하나를 든 채로 천천히 일어다. 봉다리에 노란색이 다 비칠 정도로 가득 담겨진 저 참외들은 읍내 과일장수의 인심이 분명해 보였다. 얇은 봉다리가 찢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했지만, 참외 모양들이 모난 곳 없이 둥글고 잘나서 나중엔 그 맛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옮아갔다.

 

 “기사 양반 스톱! 스토옵”

 

 정지 버튼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데도 할아버지 호령을 내리듯 외다. 그러고 한참을 더 가서야 나타난 정류장 앞에 버스가 멈춰 섰다. 성격 급 할아버지를 따라 어르신 몇 분이 더 내릴 채비를 다. 이웃과 나누는 짧은 인사말은, 멀리 있어도 서로를 다 내다보는 산처럼 살갑기도 하여라. 버스 기사 아저씨는 말없이 문을 열어 두었고, 어르신들은 그만 내려야 하는데 이 고장 민요 같은 그들의 사투리가 자꾸만 운율을 싣는다. 마침내 버스 문이 닫히려는 순간, 쫓기듯 한 사내가 뛰어나가는 것이었다. 곧바로 창밖을 보니, 같이 내린 어른들께 한 분, 한 분 절하는 사내의 흙 빛 얼굴이 참으로 순박하다. 그런데 사내의 두 손이 뒷 춤으로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었다. 인사를 마치기 무섭게 등을 돌리면서는 앞으로 감추는 것이 막걸리가 분명했다. 읍내까지 막걸리 사러 나온 게 창피했던지 걸음이 그리 바쁘면서도 앞에 놓인 팔은 결코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버스가 곡선을 그리면 들어있던 햇살이 한번 나갔다 들어온다. 정류장에 내렸던 어르신들이 사라지고 딱 그 숫자만큼의 집들이 창문에 나타났다. 줄기를 같이 하는 이 고장 코스모스처럼 집들도 어찌나 닮았는지. 이때, 창문에 코를 박고 있는 나를 함께 여행 온 친구가 깨운다. 릴 때가 되었단다. 맞아. 나는 이름이 예뻐 양에 여행을 와 있지. 버스에 앉아 람들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대학가에 두고 온 내 일상이 떠올랐다. ‘매일 똑같은 너는 여행이 아니야’ 내가 혹시 이렇게 말했다면 이제라도 취소해야겠다. 그리고 누구한테라도 여행에 대해 아는 척 할 기회가 생기면 일상이 곧 여행이라는 말을, 밀양 사람들 얘기를 곁들여서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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