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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Aug 14. 2017

필름 카메라


필름 카메라





 엄마는 옛날 사진을 꺼내 보듯 이따금씩 내 어릴 적 이야기를 하곤 한다. 기억 속을 한참 헤매보아도 잘 만나지지 않는, 내가 아주 쪼그만할 때 이야기 말이다. 정작 나는 찍히는 줄도 몰랐던 사진들을 엄마는 알뜰히 모아 두나 보다. 방금 끝낸 나와의 짧은 통화도 어쩌면, 엄마한테는 중요한 한 장이 되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날의 해가 쉴 곳을 찾기 시작한 늦은 오후, 엄마는 내 옆에서 빨래를 개는 중이었다.

 

 “준아, 니 그거 기억나나? 니 요만할 때 아빠가 ‘학준아 아빠랑 밖에 놀러가자’ 하면 쪼르르 엄마한테 와서 ‘싫어 집에서 엄마랑 놀래’ 했던 거.”


 내 흉내까지 보탠 엄마의 물음에 나는 리모컨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이미 목덜미까지 올라왔고, 바깥에 해가 내 얼굴에 쉬러오는지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겨우 참았다. 방금 들려준 이야기가 사실은 카메라 렌즈를 들여다보는 것 같이 생생하다. 잊고 지냈지만 나는 엄마 품에 안기는 걸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엄마가 직장을 다니면서부터 엄마의 퇴근시간을 시계를 쳐다보면서까지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현관문이 열리기 무섭게 엄마한테 달려가 안기면, 해지고 어둔 그때에도 나는 맘껏 뛰놀 수 있었다.     

 

 타지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기숙사에 살면서 여긴 학교 공중전화가 핸드폰 대신이었다. 그런데 별일이 없인 공중전화는 잘 안 쓰게 돼, 지나가면 그 앞에 서 있는 녀석들이란 정해져 있었다. 집에 전화하길 원체 좋아하는 녀석들. 나는 그날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다가, 작정도 없이 공중전화 앞에 발이 멈춰 섰다. 엄마 전화번호를 누르고, 통화연결음은 더 어릴 적 엄마의 퇴근시간 만큼이나 길었다. 마침내 받는 엄마의 목소리란 내가 걸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따뜻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공중전화 덕분이었나 별일 없이도 내가 먼저 전화를 걸고 했는데.    

 

 다행히 엄마는 내 부끄러움을 눈치 채지 못 했나 보다. 물음에 대답조차 않는 무뚝뚝한 아들을 웃어넘긴 다음 계속 빨래를 갠다. 힐끔 보니 내 옷을 개고 있었다. 어느새 아빠만큼 큰 옷을 입는 아들이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천천히 빨래를 접는다.    




 “아들, 이번 주에 경주 한번 내려오지? 엄마가 아들 보고 싶은데…….” 

 

 통화가 끝났는데도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내 눈치를 살피며 수줍게 뱉은 엄마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려서이다. 살갑게 굴면 괜히 덜 큰 것 같아, 나는 매번 차갑게 전화를 끊는다. 방금도 똑같이 끊고 나니 마음이 편치가 않다. 제발 방금 전 순간만큼은 사진으로 남기지 말았어야 할 텐데, 아들은 마지막으로 엄마의 필름 카메라에 기대를 걸어 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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