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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Aug 14. 2017

성수부동산 파라솔


성수부동산 파라솔





 갑작스러운 비라도 파라솔은 하나뿐이니까 예닐곱 명이 평소보다 더 다닥다닥 붙어 서 있다. 파라솔 탁자 위엔 어김없이 막걸리와 소주 몇 병, 남은 안주거리들. 몇 명은 바지 뒤춤이 축축하게 비 맞지만, 계속 부어진 막걸리 때문일, 제 종이컵이 축축한 까닭도 모르게 이미 취해 버렸다. 파라솔 밑이 좁을지언정 그렇다고 오후 늦게 온 비가 미운 것만은 아니다. 따라나섰던 초등학생 아들, 딸들 죄다 비를 피하기 위해 아빠들 옆 성수부동산 안으로 들어가줬다.   


 나는 우산을 든 채 그 앞을 지나갔다. 거리를 점한 파라솔 내부의 분위기 탓일까 나만 넓게 쓰고 있는 우산 아래가 어쩐지 휑하다. 성수부동산 앞에 저렇게 파라솔이 펴진 건 내가 본 날만 열 번도 더 넘는다. 볼 때마다 성수부동산 주인을 포함 비슷비슷한 멤버의 예닐곱 명이 윷을 놀며 술판을 벌이는 게 전부였다. 또, 파라솔 한 개로 치는 그늘이라 해봤자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중년의 아저씨들은 나무 그늘이 한 개도 안 부러울 만큼 웃고 있었다. 그러니 날씨가 궂은 오늘마저도 저렇게나 즐거운 것이다. 

 


 어제는 고등학교 동창회에 갔다 왔다. 그룹 채팅방엔 스무 명 넘게 모였다가, 실제로 나를 포함한 일곱 명만이 왔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지금에서야 모의한 탓일까 다 온 건가, 다 온 건가 하면서 술자리 내내 아쉬움이 감돌았다. 혼자 택시에서 내려 정말 오래간만에 비틀비틀 집으로 걸어갔다. 어느 길인지도 모른 채 직진만 하다가 보니 성수부동산에 다 와갔다. 건물 옆에 세워진 저건 보니까, 접힌 파라솔하고 거치대. 나는 자주 봐왔던 그것대로 펴서 오늘 헤어진 친구들과 술자리를 이어나갔다. 오늘 못 온 놈들까지 다 불러 세웠다. 그렇담 우리를 부러워하며 지나는 행인이 없나 하다가, 오히려 내가 그 행인이라는 걸 알았지만, 예닐곱 중년들이 다 부러워 도저히 성수부동산 앞을 못 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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