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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Aug 19. 2017


    





 느릿느릿 날리면서 서울의 모든 속도에게 ‘괜찮니’ 하고 묻는다. 떨어지는 나도 이렇게 느린데, 땅 위만 왔다 갔다 하는 너흰 뭐가 그리도 바쁘니 하면서.   



 고철 대문처럼 무겁게 택시 뒷좌석이 열리고 가죽부츠를 신은 발들이 밖으로 하나, 둘 나온다. 차를 탈 때만 해도 이만큼 많은 눈이 아니었던지 저들은 차에서 내리는 것보다 호들갑을 떠느라 더 바쁘다. 뒤차 경적소리가 저들을 때린다. 도로 위에선 어림없는 행동이라고 가르치는 소리가 회초리 같다. 그러나 놀란 아가씨들을 향해 또 한 번 경적이 울렸을 때는, 유명 외제차가 아니라 흡사 떼쟁이 사춘기 학생 같았다.

 그나저나, 내가 타야 할 버스는 점잖아서 아직인 걸까. 버스 정류장이 눈 내리는 바깥이라 좋다 했던 것도, 이젠 마냥 기다림으로 바뀌었다. 여긴 몇 정거장 전이다 알려주는 전광판도 안 달렸다. 요샌 스마트폰에 다 나오지만, 글쎄 며칠 전부터 화면이 말썽이라 속 편히 아예 꺼 놨다. 

 아까 택시와 성질 급한 외제차가 신호등 빨간불 밑에 나란히 멈춰 서 있다.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간다. 단 한 사람도 뒤처지지 않는 걸음들이 눈 내리는 허공에다 가로 획을 긋고 막 사라진다. 한참 남은 신호등, 텅 빈 횡단보도에 눈만 느리게 툭 떨어져 녹았다.    




 그리고 월요일엔 낮부터 눈이 왔다. 나는 아르바이트 도중에 눈 내리는 창밖을 알아 버렸고, 손님한테 나가야 할 메뉴판을 들고서 걸음이 딱 멈췄다. 원 없이는 아니더라도 잠시 멈추어 감동하는 건 아마 손님도 이해해주실거야. 며칠째 핸드폰이 고장 인 나는 서울의 눈발과 똑같은 기대를 하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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