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
둘 다 눈이다 하며 건물을 빠져나와선, 한 걸음 덜 걸으며, 나만 봤던 니 뒷모습. 좋아한다고 해봐. 해보긴 뭘 해봐. 첫 눈은 그냥 첫 눈이지. 밟으면 덮이고 밟으면 덮이는 눈을 혼자 밟으면서 걷는다.
요즘 떠나보내란 말을 잘 듣는다. 찾아가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은, 남 눈치를 잘 보던 고등학생이 지금도 남아있네 했고, 술친구인 편집장님은 계약했으면 글은 더 이상 학준씨 글이 아니지 라고 하셨다.
편의점 가는 슬리퍼지만 눈 밟기를 준비하면서 나왔다. 또 어떤 눈과 관련된 추억이… 그러나, 불과 아까 눈길이었던 길 위는 그치고 거뭇거뭇해져, 덮었으면 하는 추억마저도 못 밟는다.
괜히 슬리퍼에 밀어 넣은 발뒤꿈치만 썰렁해졌다. 눈치를 살피며 또래와 다름없으려 했던 고등학생도, 책이 되겠다 하고 편집자의 손을 타버린 글들도, 첫사랑 아니고도 밟히더라도 가만 내버려 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