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글씨체
“건강보험료 날라 왔더제?”
직접 부친 편지마냥 그렇게 묻자 나는
“그게 뭔데?”
하고 물었다. 차마 내가 모르리라 예상은 못 하고
“우체통에 건강보험료 내라고 안 날라 왔더나?”
명세서 같은 게 꽂혀 있어도 ‘있구나.’ 적잖이 지켜보는 나는
“그게 뭔데?”
엄마는 그때서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걸 알고 화를 섞어
“니가 서울로 주소지를 옮겼다면서 임마야 그러니까 앞으로 니 건강보험료는 니 쪽으로…”
나는 잠자코 들으면서 또 그건 안 듣고 나와의 길어지는 통화를 엄마는 더 좋아하고 있으리라 잘 한 게 있다는 식의 생각 같은 걸 했다. 물론 엄마일 때 그렇다는 건데 들을수록 엄마만 설명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 들으라고 하고 있는지 통화 밖에서, 엄마 중간 중간, 내가 이야기를 옮기면 따라오고, 따라오는, 굵은 글씨로 된.
“엄마 옆에 아빠 좀 조용히 해라고 해라.”
해봤자 안 그럴 걸 아는 엄마는 내 말을 안 전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건강보험료에 대한 설명과 길어진 차에 몇 가지 더 얘기 나누는 동안 굵은 목소리는 혼잣말 아니지만 통화 밖이라 잘 읽을 수 없는 글씨들을 띄엄띄엄 전했다. 두 명과 통화한 것 같은 기분으로 전화를 끊는데, 아빠의 글씨가 많이 작아진 듯한 걸 읽었다.
엄마가 누구하고 통화를 하건 아빠는 그러는 사람이다. 엄마의 상대방 목소리를 듣지도 않으면서 통화하는 엄마 쪽만 듣고 엄마가 좀 쉴 때 얘기하고, 또 엄마 말이 틀렸을 때도 얘기하고, 혼자 웃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내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 아빠한테, 엄마 통화할 때 그러지 쫌 마라고 상대방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아냐고 아빠를 혼낸 적이 있다. 무서웠던 아빠는 저녁녘 자란 수염을 씩 훔치면서 겸연쩍어 했다.
조금 전 아빠도 얼마나 설명하고 싶었을까. 굵은 글씨가 얼마나 많았을까. 하지만 난 아빠와 잘 통화하지 않는다. 엄마 중간 중간 따라오면 좀 가라고 이야기를 옮긴다. 하고 싶은 얘기를 옆에서나 하면서 통화를 상상하고 또 재밌어하는, 굵은 글씨의 폰트를 이제 좀 키워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