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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Jan 13. 2018

무제X

무제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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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견의 털이야 또 반드시 자랄 테니, 좋아할 눈동자, 그 속의 내 모양이 나는 마음에 안 들어도 괜찮다. 점점 몸에선 꽃이 핀다. 완성된 나를 보고 좋아할 표정을 상상한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애견이길 잘한 것 같다.     




 3학년 반장 선거 때부터였을지 모른다. 캔디 고르듯 투표용지에 이름이 쓰여졌고, 그날 친구들이 고른 가장 달콤한 맛은 나였다. 신나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집에 왔다. 내가 그렇게 되었다고 전하니 열 살을 다 합쳐 열 번 정도 웃어 준 것 같은 아빠가 웃기 시작했다. 잘 했네. 잘 했다고.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나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걸 하길 좋아하는 아이가 됐다. 제사 지내고 음복 때 한 그릇 먹고 더 먹어라 하시면, 다 먹어가는 밥그릇을 재빨리 비운 뒤 드렸고 그날 배가 불러 잠을 설쳤다. 어른들이 글씨 잘 쓰는 꼬마를 좋아하여 글씨를 그림 그리듯 써 온 바람에, 연필 잡는 법은 고2 때 고쳤고 지금도 그다지 편안하지 않다.


 고등학교 때도 선생님들이 볼을 꼬집어주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러다가 수능을 한 번 망쳤다. 담임선생님은 교무실에 나를 세워놓고 도대체 시험 치면서 뭐 했냐고 꾸짖었다. 나는 고개를 픽 숙이고 있으면서, 칸막이 책상 너머 앉은 다른 선생님들의 표정이 다 보였다. 아무도 눈은 나를 안 보면서 속으로 쟤는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교무실 나서는 고개 숙인 꽃으로 어느 날은 글이나 써보자 써보다가, 거기 쓰인 날 좋아해 줄 눈동잔 없어 보였다. 아무도 빗질 안 해줄 내 모습인데, 그대로 한 편, 두 편,… 꽃이 되길 좋아하던 애견의 털은 지금 그러지 못하게 뻣뻣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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