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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수건은 부엌 건조대에 보면 있대이!”
제법 컸는데 못 들었나. 다시 야! 하려는 순간 복도를 빠져나갔다. 모르면 전화 오겠지 하고 나는 강의실로 들어갔다.
“야”
“왜”
“니 아까 복도에서 소리 지르면 어떡하자는 건데?”
“뭐?”
“야, 어떤 남자 선배가 내보고 집도 막 드나드는 사이냐고 하더라. 니랑”
“맞잖아”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아… 맞네, 그렇게 보일 수 있겠네. 조심해야겠네. 그렇다면 우리 집에서 머리 좀 그만 감아 줄래?”
“싫은데?”
사학과인 내가 디자인과 수업만 들었던 한 학기에 발생한 일이다. 전과를 해온 것도 아녀 복수전공을 신청한 것도 아니니, 나는 디자인과 건물 내에서 도강생 같은 이미지였다. 그런 내가 디자인과 노현지한테 대고 복도에서 소리친 것이다. 수건은 내 집 건조대에 보면 있다고.
난 너무 즐거웠다. 노트에 수업을 적는 식이 아니어서 본인 얘기라고 다 먹히지 않음을 교수님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내주신 과제까지 까먹었으면 학교에 가면 밤새는 학생들이 절반이다. 나는 휴학 동안 공무원 떨어지고 번 돈으로 십 몇만 원 색연필 세트를 사고, 평소의 친구들과 밤새 노는 대신 밤새 스티로폼을 깎아 뭘 만들지만, 너무 재밌었다.
안 사도 될 도구들을 빌려주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자신의 팔불출 이미지를 활용해 나를 과 내 여러 곳에 소개시켜주는 건 현지였다. 내가 몸 사릴 때면 뭐 어때? 뭐 어때? 그 대신, 집이 먼 그녀가 학교에서 밤 샜다 할 때 내 자취방에서 머리를 감도록 허락했다. 민낯은 이미 많이 하고 다녔기 때문에 그러나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아니다 대부분 내가 집에 없을 때만 부탁해왔다.
서로 거의 얼굴만 알았는데 모르는 새에 친해져 있었다. 본인이 진지한 줄 모르는 나와 본인이 촐싹 맞은 줄 아는 그녀랑은 시너지가 좋았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을 보고 자기는 그 밑에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그녀가 먼저 제안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블로그에 올려보자고 또 빨리 제안하고 내가 응했다. 그땐 진지함을 덜 만큼 재밌을 거 같았다. 그것이 시작이 돼, 여기 그녀에 대해서까지 쓰고 있다. 지금도 너무 가까워서 먼 일처럼 글쓰긴 잘 안 된다.
조교쌤한테 물어보니까 타과생이 신청한다고 교칙 위반인 건 아니지만 니가 따라갈 수 있겠냐고 했다. 노현지한테 물어보니까 뭐 어때? 졸업이 늦어지기 밖에 더 하겠냐 라고 했다. 복학하면서 3학년 1학기. 나는 디자인과 학생만큼 디자인과 수업을 신청했고, 바로 2학기 디자인과로의 복수전공 시험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그때 “뭐 어때?” 해준 현지가 아직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