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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Jul 05. 2018

동훈이

동훈이





 스스로 장맛비라고 외치는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누웠는데, 옆에서 벌떡 일어난다. 곧바로 욕실 문을 열어젖혀 문밖으로 팬티를 툭 던지고는 닫힌다. 안에서 핸드폰 음악을 크게 튼다. 같이 시작된 샤워기 소리는 장맛비라도 달아나게 만들어서, 좀 들어볼라 했더니 저게 망친다고 나는 추적추적 이불이나 뒤집어쓴다. 같이 살자고 내가 그랬으니…. 



 꼭 서울에 다시 올라가야겠는데 알아본 원룸들은 보증금이 일단 천만 원. 그거의 절반 정도도 겨우 들어줄 집 분위기니까 천만 원은 말하면 안 됐다. 반반씩 내면서 같이 살자고 친구들을 쭉 찌르고 다녔다. 맞아. 두 번째인 나도 그런데 친구들한테는 서울이 오죽이나 멀까. 그러다가 초등학교 이후 소식도 몰랐던 동훈이를. 


 “야, 몇 년 만이고? 경주에 계속 있었나?”


 쪼맨했던* 것들이 인사로는 악수를 하고, 커피 값을 서로가 내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앉고 나서도 누가 쪼맨했냐는 듯 최근에 어디 있었고 뭘 했었고 같이 있어 보이는 얘기나 지껄였다. 동훈이는 이번 달로 회사를 그만둘 거라 했다. 나는 왜는 안 묻고 그럼 나처럼 서울 갈 생각이 없냐고 바로 물었다. 바로 대답이 안 나오는 게 나 위해서는 아닌 것 같아, 나는 그때부터 동훈이한테 자꾸 연락했다. 


 둘 다 집이 멀어서 버스를 타고 돌아와야 했는데, 학교 앞 문방구에서 버스비 홀라당 까먹고 걸어올 때가 많았다. 무지개 모양의 구름다리는 걸으면은 오래 걸렸다. 하여 오르막길부터 시작하면 내가 탔을 70번 버스들이 몇 대씩 혼자 내리막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몇 대가 더 넘어가나 숫자라도 안 샜던 건, 옆에 동훈이랑 걷기 때문이었다. 


 구름다리 내려서는 둘 다가 바로 집인데, 안 가고 걸음들이 멈췄다. 주차시킨 검정색 차 바로 옆. 왜 안 가고 있나 보니까, 검정색에 비쳐 뚱뚱해진 서로가 웃겨 죽겠다는 거였다. 다리를 오므렸다가 벌렸다가 하는 키들은 그 차보다도 낮았다. 햇빛이 반사시켜서 뚱뚱하게 보이는 줄도 모르고 실컷 한 다음에야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동훈이는 나와 달라 컴퓨터 같은 거에 천재였다. 나는 동훈이가 게임하는 걸 옆에서 구경이나 할 줄 알고 시켜주면 무척 못했다. 동훈이는 우리 집에 컴퓨터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딴 친구들 앞에서는 안 말하는지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동훈이한테는 부끄러운 게 참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살짝 들어오라 해서 니가 ‘야동’이란 걸 처음 보였줬잖아. 그때 고마웠다.



 회사 관두고 오백만 원이 있는 너는 자꾸 오는 내 연락에 꾀여 그래, 한번 가보자고 했다. 살아본 티를 내며 내가 홍대에서 살자 하니까 따라주었다. 하지만 나와 너무 다르게 살더라. 집에서 보내준 반찬과 밥을 먹는 난데 너는 그런 반찬들 대부분 가렸고, 내가 글 쓰는 밤에 너는 만날 술 먹고 들어와서 걱정을 끼쳤다. 어제도 그러더니만 다음 날 낮인 지금에야 씻겠다고 들어가 있다. 작년 구월에 와서 이번 장마철이 됐다. 많은 것들이 씻겨져 내려가고 있다. 와서도 어릴 적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 너도 나만큼이나 남아 있을지 궁금한데, 씻고 나와도 무슨 말을 안 걸 게 나는 분명하다.








* ‘조그만하다’의 경상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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