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준 Jun 27. 2018

우리 누나

우리 누나





 새벽에 진작 나선다고 칭찬해줄 필요 없다. 일찍부터 서울역인 건 마음이 급해서가 아니라 KTX 할인을 더 해주었기 때문이다. 예정일대로라면 오늘 낳는다네. 그러나 자세한 걱정도 없는 건, 나는 누나의 배가 얼마나 불렀는지도 모르고 일단 가는 거다.



 누나가 소파에 앉아 있다. 소파가 아래로 푹 꺼졌고 누나의 배는, 오면서 본 경주의 봉분 같다. 원래 사내처럼 무뚝뚝한 누나는 “왔나?” 하는 말만으로 나를 반긴다. 그러나 스스로 허리를 받친 한쪽 손에서 원래처럼 널널한 기분이 아님을 느낀다.


 “우와, 배 나온 거 봐라.”


 나는 중간에 친척 결혼식 때 한 번 보고 지금 처음 보는 거라 웃음기 섞어 놀라도 괜찮다. 누나도 그런 웃음으로 받아준다. 그러곤 스스로 유머처럼 “나올 생각을 안 한다” 하는데, 이 동생이 와 있는 동안 반드시 낳아달라 말해도 될는지, 나는 드디어 복잡해졌다.


 병원에서도 오늘을 넘길 거라 했단다. 매형은 출근하셨고, 누나는 자기 맘대로 나하고 커피숍에 갈 거란다. 나는 피곤했지만 누나가 혼자 봉분 꼭대기에 올라선 듯 기분일까 봐, 날씨 좋다는 핑계로 그래 가자고 한다. 그런데 해도 되는지 운전을 막 하고, 커피숍에선 자기 배부른 건 모르고 자리가 좁다고 억수로 탓하는…. 우리 누나 맞네! 그래도 오늘이 예정일인데, 나라도 달리 조심해야지.


 내가 도착한 토요일도, 일요일도 누나는 코앞인 친정집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그 모습이나 실컷 본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므로 월요일엔 떠나려 한다. 예정일대로 안 낳는다고 누나를 구박할 순 없다. 그리고 오전 일찍 매형이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누나랑 같이 병원인데, 낳아보자 했다는 것이다. 빨리 다른 친구한테 연락해서 아르바이트 날짜를 바꾸고, 부모님과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실에서 만난 누나는 초록색 천으로 얼굴 아래쪽이 덮인 채 누워 있었다. 나와도 눈을 맞췄다. 불안해하는 누나를 이번에도 우리 누나 맞다면서 믿어줄 순 없었다.


 다음 날 새벽까지 진통이 계속되다, 웃으면서 들어가도 된다고 하는 간호사의 말에


 “역시 우리 딸이다!”


 아들이 못 갖춘 단단함이 있어 항상 누나이고 보는 아빠가 튀어나간다. 그래서 누나를 잠시라도 부러워하는 게 아니라, 지금은 누나가 걱정스럽다. 아기 울음소리. 침대에 누운 누나 손을 매형이 잡아주었고, 나는 침대 멀찌감치에서 우리 누나, 우리 누나, 했다. 



 나는 화요일 아침 신경주역에 서서 KTX를 기다린다. 급하게 시간을 변경한 거라 할인도 못 받았다. 열차 기다리는 플랫폼이 뻥 뚫린 이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까이에선 제법 곡선을 그리다가, 열차에 올라타서는 멀리의 산 곡선이 점점 낮아졌다. 이제 배가 낮아진 누나야말로 조카와 함께겠다. 











작가의 이전글 네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