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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22. 2018

비둘기

비둘기





 회색에 연보라가 뒤섞인 신문지 한 장이 자기도 올라타려는 듯 뒹군다. 단지 신호등 때메 멈춘 버스 앞유리에 심지어는 구걸하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 맨 앞자리, 버스 기사님의 오른쪽 뺨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저기 신문지가 참 안됐다. 버스 기사님이 슬쩍 핸들을 잡았다. 따라서 신호가 곧 바뀔 텐데, 아니 도로 위 신문지는 타겠다는 마음을 아직도 안 버렸다. 



 “……고치라는 건 유감입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건데 계약을 파기하면 안 될까요?”


 ‘보내기’ 버튼이 눌렸고, 나는 핸드폰 자락에 꺾인 손목을 허리춤으로 떨어뜨려 걸음과 박자를 태웠다. 아니거든. 절대 괜한 심술 아니거든. 하지만 센 걸음걸이는 꾹꾹 눌러쓴 글씨들을 한 글자 한 글자 다시 튕겨내려는 동작 같았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편집장님과 나는 기분이 좋았다. 학준 씨 이번 책은 제대로 밀어보려고 해. 어쩌다가 편집장님께 살가운 작가가 아니므로 내 표정은 미지근했지만 기분이 더 좋아지려 했다. 글은 평상시대로 쓰면 된다고 하니 잘할 자신이 있었다. 편집장님이 좋은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문자를 읽으셨겠지. 바로 답장이 안 오리라도 답장이 오긴 와야 하는데. 핸드폰을 떨어뜨린 손목에선 겁도 났다. 겁내선 안 되지.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면서 내가 썼는데. 어떻게 그렇게 고치란 말인가. 고치라고 할 때의 편집장님은 내 글이 좋다고 하던 그분이 아니었다. 센 걸음으로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켰는데, 편집장님께 보내드렸던 원고가 화면 속 참 작은 아이콘 하나다. 핸드폰에 답장이 없다. 나는 내가 쓴 문자 밑에다 지금 편집장님 계신 곳으로 찾아가야겠다고 또 보냈고, 계약금을 돌려드릴 계좌번호가 쓰인 답장을 받아냈다. 



 눈을 질끈 감았는데, 회색에 연보라가 섞인 비둘기였다. 출발하자 버스 앞유리로부터 사뿐하게 날아 다시 내려앉는다. 오른쪽 창문으로까지 확인한 다음, 그런데 그게 안심이 되는 게 아니라 나는 더 걱정스럽다. 거기 도로변에 남아서 또 버스에 올라타고자 할 텐데, 어느 기사님의 뺨이 비둘기를 향해 움찔해줄까. 고치지 않겠다 하고 스스로 올라타기를 포기해버린 내 글이 신문지만 안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제 비둘기라 해도 그 날갯짓은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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