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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Aug 27. 2018

백일잔치

백일 잔치 





 그런데 바깥이 다시 한상 차리는 듯 시끄럽다. 귀여운 조카의 잔치라더니 상 물리자마자 방 안 침대로 도망 온 나를 나무라나.


 “바퀴벌레!”


 누난데, 누나는 워낙 싫어하니까 한 마리 들어온 걸로 호들갑을 칠 만도.


 “저기 또 있다.”


 이번엔 어른들의 목소리다. 


 “관리자한테 전화 걸어라! 어서!” 


 결국 나도 거실로 나와봤더니, 바퀴벌레 몇 마리 자기들 잔치처럼 날고 있고, 열이 나서 관리인이 도착하기를 벼르고 선 아빠, 거실 전체의 성화에 한 수씩 보태지만 술잔을 덜 내려놓은 사돈어른. 잔치의 주인공만이 저기 방 안에서 잘 자고 있었다. 조카 덕 본다며 고급 리조트로 들어섰건만, 이게 뭔 일이람. 나는 식탁 위 이미 잡힌 벌레들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빈 소주병 개수와 비슷했다. 


 “죄송합니다. 이런 일이 저희 쪽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


 “처음이고 나발이고, 여기선 갓난애 못 재웁니다. 짐 싸라. 차라리 우리 집으로 가자.” 


 리조트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 집에 조카를 포함한 누나네 식구와 사돈어른 두 분까지 다 들어왔다. 잔칫상 앞에서 사진 찍히느라 피곤했는지 조카는 오는 동안도 깨지 않았다. 잔칫집의 식구 수는 그대로였지만 눈꺼풀들이 피난 온 듯 살짝씩 흐릿해졌다. 결국 잘 사람은 자고 놀 사람만 더 놀기로 합의를 하자, 거실엔 조카의 외할아버지와 할아버지만 남아서 소주상을 폈다. 


 내 방은 내어주고 나는 엄마와 안방에 들어가 누웠는데, 거실이 시끄럽긴 리조트 때와 매한가지였다. 자식 키우는 일에 대한 두 할아버지 간의 승강이가 넘치려다가, 넘치려다가, 다행히 술이 모자라서 안 넘쳤다. 사돈어른은 내 방으로, 아빠는 내가 누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왜 엄마 옆에 눕지 않고 내 바로 옆에 눕는다. 지닌 잠버릇대로 눕자마자 옆 사람한테 다리를 얹는데, 하소연할 곳인 엄마는 내 다른 옆에서 잠들어버렸다. 나는 둘 사이에 이렇게 누워 있는 내가 참 오랜만이었다. 


 거실의 에어컨을 틀어놓아서 누나네 식구는 방문을 저렇게 열고 잔다. 누나, 매형 그리고 자는 폼마저 양옆을 닮은 조카. 너무 작아서 신기하다. 계속 보다가 거실의 화장실을 쓰고 난 뒤 또 보다가 돌아와 눕는다. 이렇게 엄마 아빠 사이에 누워 있기는 조카나 나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번뜩 들자, 이불 밑으로 길게 삐죽 튀어나온 내 다리가 징그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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