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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Apr 19. 2021

경주4

 경주. 뙤약볕에서 일하는 농부와, 그가 주인인 마지기의 논은 서로를 헤아릴 줄 안다. 그 모습을 빨리 지나치지 않고 멀찌감치 다들 쳐다본다. 나도 그렇게 쳐다보기만을 하고 싶은데, 자꾸 논 주변에 위치한 우리 집이 보이는 것 같아 잘 안 된다.


 가끔 전부 논밭인 곳으로 오해를 산다. 경주도 아파트 건물이 파다하게 널린 도시인데 말이다. 중학교 수업을 다 마치면 친구들 대부분이 아파트로 향하거나, 아님 아파트 근처에 위치한 보습학원으로 간다. 그런 친구들을 배웅하듯 떠나보내고 나는 혼자서 걷는다. 걸어서 걸어서 아빠의 방앗간으로 들어선다.


 각자의 일과를 마치고 모인 우리 가족은 저녁식사를 여기에서 해결한다. 아빠가 손님을 기다리기 위해 만든 방 한 칸엔 싱크대, 냉장고, tv가 다 들어있다. 나는 이 공간이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든다. 인기척을 생략하고 들어온 손님이면 우리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된장국을 떠먹는 장면을 낱낱이 목격할 수 있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방앗간 문을 닫을 동안 누나와 나는 먼저 차에 올라타 있는다. 핸드폰을 사달라는 조건을 건 뒤 반장이 된 누나는 혼자 핸드폰을 갖고 논다. 엄마의 구형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나.


 “경아, 준아. 너희는 아빠가 방앗간 하는 게 부끄럽나?”


 까만 정적을 몰고 가던 도로 위였다. 엄마는 그 질문을 하면서 조수석에서 돌아 누나나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빠도 가만히 운전만을 했다.


 “난 안 부끄러운데? 안 부끄러우니까 친구도 막 데려왔지.”


 “준이는?”


 안 부끄럽다는 게 반 이상 사실일 누나. 나도 따라서 그래야만 했다.


 “나도….”


 그러나 엄마가 인정할 수 없는 조그만 목소리였다.


 차창에 논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집에 가까워온다. 아파트도, 학원도 없는 동네. 정적뿐인 창밖은 차 안에서 내가 삼키는 중인 죄책감엔 아무런 도움이 안 됐다. 가족들 눈치를 보면서 차에서 내렸다. 농부의 마음을 자기가 헤아렸듯 내 마음도 헤아려주겠다 하는 논. 나는 그런 성의를 무시하고야 만다. 나에게 논이란, 내 친구들처럼 그냥 멀찌감치 구경만 하고 마는 것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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