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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Apr 19. 2021

한강을 놓친 이유

 창문이 거기 있는 줄도 잊은 채 한참을 타다가, 잠실철교 위를 밟는 순간, 서울 메트로가 한강을 향해 일제히 창문을 냈다. 한낮의 햇볕이 여러 사람들을 비추고 나는 그들과 깔린 주단 위를 직진하고 있었다. 가노라 하는 예고도 없었으니 아마 시골 뜨내기라면 방금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걸 겨우 참았지 싶다. 


 모두 값비싼 관객이 되려고 연습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값비싼 전시나 연주회를 볼 땐 얌전한 법이므로 한강이 나타났어도 일부러 놀랍지 않은 척 저러는구나 했다. 그런데 알아차렸다고 믿기엔 아무한테도 달라진 구석이 보이질 않는다. 누군가와 눈을 맞추는 게 싫어서 계속 맞은편 자리의 무릎만 살폈고, 손바닥마다 하나씩인 전자기기들로 나를 방해하지 말라고 외치는 중이었다. 그나마 창밖을 내려다본 한 사람은, 마치 번지점프처럼 한강 근처까지만 시선을 빠뜨렸다가 서둘러 자기에게로 돌아오기 바빴다.   


 마냥 한강이 새로운 나는 조금 외로워졌다. 그 자리에서 고개만 들면, 고개만 돌리면, 창문 밖이 당신을 쉬어가도록 해줄 텐데. 전동차 안 우리들은 잠시도 같이 휴식할 수 없나 보다. 과연 서울 사람들에게 한강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다 ‘서울깍쟁이’란 그 말이 나는 밉지만, 당장엔 자연스러웠다. 창밖으로 저 한강은 별 대단치도 않은 일을 겪듯 조용히 끝나가고 있다. 서울 메트로도 열었던 창문을 닫고 도로 어두운 지하로 들어설 채비를 한다. 


 하루를 돌아, 서울 메트로가 또 한 번 나를 태우고 잠실 철교 위를 지난다. 한낮의 볕도, 강물의 색깔도 물러난 시각, 창밖엔 강가를 밝히는 가로등 불빛들만 밝다. 몇 걸음마다 똑같이 생긴 가로등이 꼭 한강을 구경도 않고 살아가는 우리 사는 모습처럼 느껴져 나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때, 노신사 한 분이 내 옆에서 더딘 몸짓으로 일어났다. 내릴 채비를 하며 내리는 문 쪽으로 걷는 그의 걸음걸이에 지난 세월 동안의 무뚝뚝함 같은 게 묻어난다. 일평생 그러지 않다가 지금 해보는 듯, 아주 어설프게, 그의 눈이 서너 번 넘게 깜빡거리는 걸 보았다. 나도 몰래 그 깜빡임을 따라갔다. 서 있는 것도 서툴 꼬마 아이가 부모 품에 안겨서는 노인의 눈이 깜빡거릴 때마다 웃고, 또 웃고 있는 게 보였다. 


 노인의 눈을 따라가느라 창밖으로 한강이 끝나가는 장면은 놓치고야 말았다. 내리는 그의 뒷모습을 끝까지 챙겨보는 게 나는 더 좋았나 보다. 순간 서울깍쟁이들에 대한 서운함도 한풀 꺾여버렸다. 노인과 함께 전동차를 탔던 나머지 사람들한테도, 아이의 웃음은 아니지만, 한강을 놓칠만한 더 큰 세상이 있었겠지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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