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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Apr 21. 2021

이방인

 아직 일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 카페에 이바지하는 것도 없지만


 “고생하셨습니다!”


 제일 우렁차게 인사드리고 나서 아르바이트를 마쳤다. 카페 문을 열고 나와 홍대 지하철역 쪽으로 걸어간다.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각. 복잡한 가로등 불빛과 간판들 사이를 헤매지도 않고 걷는 내가 벌써 서울 사람이 다 된 것 같다. 머쓱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8번 출구 앞에 다 와놓고 발이 새버렸다. 거기에 설치돼 있는 포장마차한테로 말이다. 귀퉁이마다 사람들이 서 있는데 나도 거길 비집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일을 하고서 온 나와 달리 포장마차 안은 주말 밤을 즐기는 사람들의 마지막 코스였다. 오뎅 국물 한 컵으로 남은 취기를 달래도보고, 그래도 뭔가 아쉬운 건지 떡볶이 한 접시를 왁자지껄 나눠 먹는다. 오직 사장님만이 대쪽 같은 자세로 순대를 썰고 계셨다. 나는 구석 모서리에 숨어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러다가 신도림역에서 갈아타야 되는 1호선 막차가 떠올라, 그마저도 즐기지 못하고 속도를 올렸다. 


 계산을 잽싸게 마치고 빠져나오는데 전철역 계단을 밟는 게 싫어졌다. 생각해보니까 나는 서울에 오고 나서 주말 밤을 즐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포장마차 사람들처럼 못 해본 내가 갑자기 억울했다. 나는 이 억울함을 풀고 싶다. 지금까지 걸어온 것과 반대로 걸음을 휙 돌려버렸다.


 열두 시가 넘었음에도 아랑곳 않고 주말 밤을 티내는 홍대. 지금처럼 걸어만 다녀도 첫 차 시간까지 지겹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블록처럼 나뉘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했다. 홍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버스킹 공연들. 어떤 블록으로 들어가 볼까 하다가, 구경하는 사람들 숫자가 제일 적은 곳으로 갔다. 키보드를 치면서 노래를 하는 한 명, 젬베처럼 생긴 타악기를 치는 나머지 한 명. 영어 가사로 된 음악을 들려주는데 자작곡일지도 모른다할 만큼 낯설었다.  


 이것까지만 듣고 블록을 옮겨야지 할 때 똑같이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을 한 중년 남성 세 분이 나타났다. 공연 옆의 얕은 계단으로 걸터앉는데 마치 술자리를 잇듯 앉자마자 본인들끼리의 잡담을 나눈다. 공연 중인 둘한테 귀나 기울여줄까 의구심부터 들었다.


 분명 영어 음악이 더 하고 싶은 둘 같았는데, 의아했다. 바로 다음이 김광석 노래라니. 옮길 거라던 나는 조금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 분주하던 주변이 가만히 정리되는 느낌인 건 김광석의 노래 때문도 있지만, 계단에 앉은 중년 세 분이 사담을 접고 공연에만 몰입해줬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나와 가장 가까이의 한 분께서 공연을 보다 말고 고갤 들어 계속 허공을 쳐다본다. 먹먹한 표정으로, 이곳을 점령한 젊은이들을 피해, 허공에서나마 본인들의 젊음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한 곡이 끝나버렸다. 그가 일어나더니 허리춤에서 지갑을 꺼내 버스킹 상자에 오만원권을 넣고 돌아온다. 그로부터 버스킹은 한참동안 김광석의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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