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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May 27. 2021

가자미와 만년필

수능을 막 끝내고 진학 상담을 받던 날이 떠오른다. 우리 반 서른다섯 명 중 인문학을 전공하겠단 사람이 딱 몇 명 있었는데, 그중에 한 명이 나였다. 다른 녀석들은 졸업 후 취직이 잘된다는 이유만으로 전부 경영학과 아님 경제학과를 지망했다. 문구점에서 샤프심을 고르듯이 쉽게 쉽게 진학 상담을 마치는 녀석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만이 만년필을 골랐다라고 믿었다. 샤프심보다야 훨씬 더 값비싼 만년필을. 


사학과 신분으로 한 학기를 디자인과로만 채워보고, 떨어진 다음엔 5학년까지 다닐 기세로 국문학과로 복수전공도 해봤다. 별별 수업을 다 듣다 보니 강의실에서 쫓겨날 뻔도 해봤고 그러나 교수님을 찾아가서 제발 듣게 해달라고 빌어본 적도 몇 번 있다. 재수가 좋았는가, 4학년 이내로는 졸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이 바로 그 마지막 학기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내 만년필의 농도를 알맞게 맞췄을까. 


잠들려고 눈을 감으니까 고3 때 우리 반 녀석들이 가자미눈으로 날 내려다본다. 진학 상담을 받던 그 날 같은 비릿한 눈빛이다. 나는 그날 내가 고른 만년필이 훨씬 더 값어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알맞은 농도를 못 찾을 바엔, 진하기가 미리 정해진 샤프심도 괜찮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저 녀석들을 좀 봐라. 한쪽 면밖에 안 보이겠지만 지금의 나보다야 훨씬 더 팔딱거리고 있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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