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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Jun 07. 2021

2학년 2학기

내가 홍대로 간 까닭

과마다 신입생들이 밀려오자 내 가슴팍에도 선배라는 배지가 달렸다. 과방 앞 사물함을 쓸 때도 조심스럽다. 하필 과방 문이 열리거나 하면 유난스러움을 즐기는 새내기들이 앞 다퉈


“선배, 안녕하세요!”


“선배! 안녕하세요!”


그러면 일부러 덜떨어진 말투로


“아…아 안녕.”


하고 나는 부리나케 도망친다.


사물함에서 내 두꺼운 전공 책들이 나왔다. 후배들이 이것마저 봤다고 하면, ‘선배는 저런 두꺼운 책들도 감당해내시는구나.’ 제발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학과 09학번인 나는 처음부터 배울 맘 하나 없이 산 책들이며, 내용은커녕 책 제목이나 간신이 외운다. 이뿐이겠는가. 성적이 떨어져서 얼마 전에는 기숙사로부터 쫓겨났고, 국립대 학생이면 한 권씩은 다 샀다는 토익 책 한 권이 없다. 후배들 눈에 안 들게 최대한 덜떨어진 선배인 척 하는 게 이런 나로서는 훨씬 더 마음이 편하다.



2학기가 끝나간다. 친구와 같이 사는 원룸을 비워야 되는데, 아르바이트 중인 레스토랑에서 일을 조금만 더 도와줄 수 있겠냐 부탁해온다. 나는 고향집으로 가면 공무원 시험 준비해란 잔소리나 들을 테고, 그럼 일을 돕기로 하되, 잠은 레스토랑 휴게실에서 청하기로 했다. 가장 늦게 퇴근하시는 주방장님을 감히 내가 배웅해드리고 레스토랑 안을 전부 다 소등시킨다. 그리고 씻고 나서 휴게실의 간이침대에 누우면, 이것도 뭐 그리 나쁘지 않은 잠자리이다. 


누워 멀찍이 보이는 tv에서는 다큐멘터리가 틀렸다. 제목이 ‘홍대.’ 젊음과 관련해서 많이 들어본 곳이다. 부산으로 치자면 서면이나 남포동쯤 되겠네. 그런데 보다보니, tv 속 젊은이들은 전혀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음악이 하고 싶어져서 무일푼으로 이곳으로 왔단다. 부동산에 들어가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 젊음을 응원한다며 누울 수 있는 방을 마련해주셨단다. 생계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지해나간다. 그리고 저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물감 같았다. 현재 내가 섞여 있는 국립대 학생들, 두꺼운 토익 책에 눌려서 살아가는 삶과는 달랐다. 차가운 간이침대 위가 뜨끈뜨끈해졌다. 레스토랑과 약속한 며칠을 채운 뒤에 방학 동안만이라도 저곳에 가서 살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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