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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Aug 29. 2021

바다 한가운데

제 브런치의 <서울>글을 읽고 오시면 더 좋습니다.

다대포해수욕장을 비낀 부두에 뱃일을 마치고 정박한 어선들. 바다 한가운데에서 흘렸을지 모를 저들의 땀 냄새가 부둣가에까지 파도의 높낮이를 연상시킨다. 어선들 앞앞을 지나가던 도중 나는 배 한 군데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물이 처음 실었을 때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 불가피한 일이 생겨 바다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들어온 배 같았다. 출판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내가 생각났다. 오늘은 비록 뱃일을 망치고 들어온 배일지라도, 어느 날엔 바다 한가운데에서 준비해온 그물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서울로부터 온 지도 벌써 한 달 가까이나 흘렀다. 그동안 다대포 해수욕장을 가는 것 말고는 정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고, 처음 내 사정을 딱하게 봐주던 친구도 이러는 나를 점점 답답해하기 시작했다. 바다에 던져버리고픈 응어리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친구에게는 도저히 알아듣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월세’ 명분으로 그 애가 받아주는 만큼인 십오 만원을 쥐어줘 봤다. 그래봤자, 내가 이곳에 더 머무를 수 있는 분위기는 자꾸 사라지는 것 같았다.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밖으로 자꾸 나를 불러내주던 친구가, 집에서 내가 한 말을 오해한 나머지, 약속 장소로 내가 대학교 때 짝사랑하던 여자 애를 불러낸 것이다. 약속 장소에 다 와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길거리에서 친구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친구의 애인이 옆에 같이 서 있는데도 상관 않았다. 욕을 섞어 가며 심한 말을 내뱉고, 제 분을 못 이겨 몸을 떨기까지 했다. 그러는 내 모습을 처음 본 친구는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신세져서 참 미안하고 지금 당장 짐 싸서 나갈게.” 하고는 휙 돌아섰다. 그리고 혼자서 버스를 타고 친구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는 알겠더라. 한 달 동안의 바다로도 달래지 못한 내 예민함을 금방 애꿎은 친구한테 풀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가족밖에 안 남았다. 나는 경주의 부모님 집 근처에 사는 누나한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자, 누나는 네가 잘못 했네 라는 식의 잔소리를 하더니, 결국은 매형과 함께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부끄럽게 왜 매형이 오냐고 따지려다가 분위기를 파악한 뒤 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친구가 약속 장소로부터 돌아오기 전에 누나가 먼저 도착했고, 트렁크가 큰 매형의 차엔 내 짐들이 수월하게 들어갔다. 누나와 매형은 기왕 나를 도우러 온 거 여기 부산으로 드라이브를 나왔다는 식이다. 맛 집을 검색 중인 둘의 뒷자리에서 나는 창밖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한 달 동안이나 봤던 바다. 그 한가운데에 그물을 던져보는 상상을 했었는데, 지금 나는 힘없는 뗏목이 되어 부모님 곁으로나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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