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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Aug 16. 2021

서울

제 브런치의 <계약 파기>글을 읽고 오시면 더 좋습니다.

드라이버로 경첩을 떼어낸 뒤 책상다리들을 따로 모았다. 큰 짐이라고는 책상이 거의 유일하니 트럭 아니고 차 뒷자리일지라도 전부 들어갈 것이다. 나를 도우겠다고 나서준 형 차를 기다리면서 짐 정리가 끝난 자취방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간 원고를 쓰면서 느껴온 감정들이 먼지와 함께 고스란히 쌓여 있다. 나는 떠나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 살기도 된 2년을 채우지 못해 새로 들어올 사람을 내가 직접 구해놓고 집주인한텐 위약금까지 물어야 했지만, 나를 갉아먹는 이 방 안의 먼지들 때문에 나는 무조건 떠나야만 했다.


차 뒷자리에 대각선으로 책상을 밀어 넣고, 의자, 이불, 옷가지, 그릇들을 요리조리 실었더니 다행스럽게도 문이 닫혔다. 이제 앞자리에다 나를 태우고 출발한다. 일 때문에 차로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진영이 형이 오늘이면 가능하다고 나를 도와준다. 가는 곳은 부산, 대학교 때 친구네 집이다. 녀석한테 힘든 척을 흘리며 며칠만 신세를 지면 안 되겠냐고 물었더니, 싫지만 오라는 식의 허락이 돌아왔다. 운전석에서 형은 아까부터 나를 이해 못 한다는 눈치이다. 무작정 내려가고 나서는 그다음부터 뭘 할 건지 물어온다. 친구한테 마냥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도 일러준다. 나는 웃음으로 넘기면서 속으로 바다를 볼 거라고 다짐한다.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안 하고 한 동만이라도 바다를 볼 거라고.


형은 눈치 못 채게끔 앉아 있지만 사실 난 두 다리가 붙어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해체된 상태이다. 출판이 무산이 되고 나서부터 쭉 이런 상태로 지냈다. 희망이 문득 생겨서 새로운 출판사에게 내 원고를 보내보기도 했지만, 그렇고 그런 거절 멘트만이 돌아왔다. 서울을 차지한 빌딩들이 나를 잡아먹는 공룡처럼 느껴져 외출을 꺼린 지가 한참 됐다. 형이 운전해주는 이 도로 위에서도 나는 눈이 마주칠 것 같아 창문 밖을 잘 못 본다. 그러던 도중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한다. 제 몸으로부터 떨어져 있던 두 다리가 달라붙듯 나는 숨쉬기가 갑자기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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