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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Oct 15. 2021

<괜찮타, 그쟈>(2015)

카페 마감을 하랴 분주히 몸을 돌리고 있는데 사장님께서 나를 부르신다.


“학준아 여기 나와 봐. 누가 너 찾아왔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 시각이었다. 누구지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나가봤더니, 낯선 얼굴의 한 남성이 나를 아는 마냥 기다리고 서 있다.


“누구……?”


“안녕하세요. 이학준씨죠?”


곧바로 이어진 그의 바람이란 내 ‘괜찮타, 그쟈’를 열 권 살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한 권을 그제야 발견했다. 누군가는 내 책을 읽어주겠지 했는데 그 누군가가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눈앞이 너무 가슴 설레어 ‘열 권’이란 숫자는 나중에 깨달았다. 열 권이란, 내가 이따금 인쇄가게를 들러 찍어오는 숫자를 다 합친 것과 같았다. 지금 한꺼번에 사주시겠다는데 나는 그가 의아할 정도로 고마웠다. 그래도 한 가지 만큼은 궁금했다. 과연 내가 여기서 일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을까.


바로, 내가 다니는 미용실을 그도 다닌다고 했다. 나는 미용실 사장님과 퍽 친한 사이인데, 허락을 맡고 거기 잡지들 사이에 놓아둔 ‘괜찮아, 그쟈’를 그가 읽어본 것이다. 당연히 내가 카페에서 일한다는 것도 사장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단다. 열 권이나 구하는 까닭에 대해선 일일이 캐묻지 않았다. 단지 너무 고마운 나머지 다음번에 차라도 한 잔 사드리겠다고, 또한 제가 찍는 즉시 연락을 드리겠다고 그로부터 전화번호를 받아냈다.


홍대의 한 찻집에서 만나 ‘괜찮타, 그쟈’ 열 권을 전달했다. 여전히 낯설지만 한순간에 은인인 것 마냥 나는 대하고 있었고, 그도 내 글에 대한 애정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지인들에게 한 권씩을 선물할 거란다. 벌써 머릿속으로 열 명을 그려놓은 듯 이야기하는 그의 앞에서 나는 일어나 절을 하고 싶었다. 나보다 다섯 살 가량 많다는 그를 이제부터 형이라고 불러야 되겠다. 형, 태윤이 형. 


형의 열 권 가운데 한 권이 두 번째 은인인 수영씨에게로 갔다. 형이 말해주길 본인과 함께 디자인 회사를 다녔던 동생인데, 실력 있는 디자이너이고, 책 선물을 받고 나서 특히나 좋아했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꼭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형의 본론은 그게 아니었다. 형은 애초부터 ‘괜찮타, 그쟈’가 글에 비해 모양이 꽤나 아쉬웠다고 한다. 지금처럼 스테이플러로 짜깁기한 형태가 아닌, 두께도 좀 더 키우고 글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는 복장을 갖춘다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이었다. 알고 봤더니, 친하다는 수영씨께서 내 책을 한번 맡아서 디자인해주고 싶다는 손길을 내민 상태였다. 


형이 소개시켜준 수영씨는 나보다 한 살 어려 수영이라 부르기로 했다. 수영이랑 태윤이 형 나, 셋이서 주마다 모여 책 만들기를 위한 회의를 열었다. 두께부터 키워야 하니까 나는 그동안 써온 글들을 내놨다. 책의 주인은 어찌됐건 ‘나’인 거라며 나머지 두 사람은 아주 사소한 의견도 내 동의를 구해가며 모았다. 그런데 편집에 대해 아무 지식도 없는 난 계속 고갤 갸우뚱거렸다. 그럴 때마다 둘은 얼마나 내가 답답했을까. 회의를 통해 모인 의견을 바탕으로 수영이가 책을 디자인하고, 인쇄소로 넘겼다. 마침내 내 집으로 배달된 이백 권. 제목은 똑같지만 예전 전단지 책 같았던 ‘괜찮타, 그쟈’가 아닌 맞춤옷을 입은 백이십 페이지짜리 <괜찮타, 그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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