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수건으로만 털어 물기가 남아 있는 머리카락. 골목을 빠져나가는 동안 이웃 빌라의 유리들이 그런 내 모습을 비춰도 나는 끝까지 모른 체했다. 대로변으로 바뀌자마자 버스 정류장이 나타났다. 그런데 ‘망원동’인 까닭일까,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대로변엔 자신을 멋들어지게 꾸미고 나온 젊은 남녀들 투성이였다. 그제야 부끄러움이 밀려온 나는 주섬주섬 머리칼을 손으로 가리며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버스에 올라타서는 나에게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의 시선을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등을 졌다.
십 분쯤 지나 상수동에서 내렸다. 망원동과 얼추 비슷한 동네인지라, 나는 젊은 사람과 조금이라도 덜 마주치기 위해 멀지만 어두운 길로 돌아 걸어갔다. 마침내 걸음이 선 곳은 작은 가게 앞. 마치 갤러리 같다. 유리로 덮인 쇼룸에 그림 몇 점이 걸려 있고, 핀 조명이 그것들을 알맞게 불 밝히는 중이다. 간판을 보면 달리 미용실인가 싶다. 작은 글씨이지만 ‘the cut’이라 쓰였고, 그 위로 머리빗 그림이 그려져 있다. 쇼룸과 나란한 나무 출입문으로 다가서자, 나무에 자그마하게 뚫린 유리를 통해 정답이 들여다보인다.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예약을 걸어 찾아오는 1인 미용실이다.
“사장님 바깥에 그림 또 바뀌었네요.”
아마 매달 쇼룸 안의 그림들이 바뀌는데, 더 다양한 그림들을 소개하기 위한 사장님만의 규칙이지 싶다. 미용실을 찾은 손님이 그림을 사 가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오늘도 드라이기로 안 말리고 씻자마자 바로 왔어요.”
그러자, 이제 겨우 물기를 날려낸 내 머리카락을 사장님이 칭찬해 주신다. 실은 못 생기기로 두말할 나위가 없는 내 두상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외출할 시엔 드라이기로 머리카락을 눌러주는 게 필수가 돼 버렸는데, 그렇게 하고 오면 사장님이 머리를 자르기가 어렵다고 하셔서 오늘도 감자마자 바로 달려온 것이다.
“외출도 거의 2주 만에 한 거예요…….”
사장님한테 넋두리도 늘어놓는다. 안경을 벗어서 거울에 비친 나도 잘 안 뵈지만, 머리를 만져주는 사장님이 옆집 삼촌같이 푸근해서다.
“밥은 먹었어요?”
“아직 한 끼도 안 먹었어요. 이따 집에 가면서 뭐 사 가야죠.”
“아니 글 쓰느라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밥이라도 잘 챙겨 먹어야지!”
홍대 근처인 여기에서 오랫동안 미술 하는 사람들을 지켜봐 온 사장님이 내 건강을 걱정해 주신다. 나는 그게 진심일 게 틀림없어서 고맙다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지난번에 포켓몬 빵을 못 구하고 있다는 사장님의 초등학생 딸이 지금은 그걸 구했냐고 여쭤봤다. 일찍이 코로나에 걸리셨던 사장님의 노부모님께 혹시나 후유증이 나타나진 않으셨냐고도 여쭤봤다. 내 이런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시면서도 사장님의 가위질은 역시나 촘촘하면서 정확했다. 다 끝난 뒤에 다시 안경을 쓰자, 내 못생긴 두상은 완벽히 보정이 돼 있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반드시 전해야지 속으로 다짐을 하며 계산을 하려는데,
“같이 저녁 먹을래요? 나도 밥 먹을 참인데, 근처 식당에서 같이 먹어요.”
덕분에 오늘 저녁은, 아니 오늘 첫 끼는 혼자서 해결하지 않아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