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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10. 2015

무제

 




 누군가를 사랑할 때,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던 지난날을 떠올리기란 끔찍하다.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던 나는 도대체 무엇을 붙잡고 살았을까. 오직 해만 사랑하는 ‘꽃’들도 밤이 되었다고 해서 다시 꽃잎을 다물지는 않는다.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던 내 지난날도 해를 기다리는, 아침이면 잊혀질 꽃의 인고와 같은 걸까.

 글을 쓸 때, 전주부터 소름이 돋는 어떤 노래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이 음악을 다운받지 않았더라면 하는 상상은 아주 먼 나라에 가 있다. 결론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글을 쓰고, 음악에 체온을 빼앗기는 것밖에 나는 못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안전장치도 없는 내 마음은 ‘힘든 생각’에게도 쉽게 문을 열어 준다. 그러고는 이 생각이 문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안 한다. 나는 숨을 내쉴 때마다 ‘힘든 생각’을 한번 씩 거쳐 가야 했다. 마치 시간이 다 되었다는 듯, 그것은 들어올 때처럼 소리 없이 나를 나가주었다. 그리고 내 마음에는 작은 안전장치 하나가 만들어져 있었다.


 오늘 밤 공원을 산책하다가 본 꽃 한 송이 때문에 이 글을 쓴다. 요즘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힘든 생각’에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도 않고 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보름달이 한참 걸음 전과 똑같은 자리에 걸려 있다. 항상 그곳에 있어주는 이가 너라도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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