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준 Sep 10. 2015

밀양(secret sunshine)

 




 돌부리에 걸린 버스가, 오늘만 해도 수차례라며 대수롭지 않게 덜컹거림을 토해낸다. 시골은 길목마다 나무 그늘이어서 한 여름 햇살이 버스 안을 들었다 나갔다 바쁜데, 마침 햇살이 든 때였다. 엉덩이들은 들썩 거렸고, 햇살은 남아 있는 자리가 없어서인지 혼자서 겨우 중심을 잡는다. 맨 뒷자리의 나는 눈썹 사이를 잔뜩 찌푸렸다. 도시 지하철의 날렵함이 그리웠던 것은 아니지만, 돌멩이 하나 이기지 못한 버스 치고는 너무도 당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스 안 어르신들은 다들 괜찮으신가 보다. 아무리 눈에 익은 길이로서니 돌부리가 미우실 법도 한데, 앞좌석 손잡이를 꼭 쥐어 보시고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때 회색 양복에 회색 중절모까지 차려입으신 할아버지께서 검은 봉다리 하나를 든 채로 천천히 일어나신다. 봉다리에 노란색이 다 비칠 정도로 가득 담겨진 저 참외들은 읍내 과일장수의 인심이 분명해 보였다. 얇은 봉다리가 찢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했지만, 참외 모양이 모난 곳 하나 없이 둥글고 잘나서 나중에는 그 맛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옮아갔다.

 "기사 양반 스톱! 스토옵"

 정지 버튼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데도 할아버지께서는 호령을 내리듯 외치셨다. 그러고 한참을 더 가서야 나타난 정류장 앞에 버스가 멈춰 섰다. 성격 급하신 할아버지를 따라 어르신 몇 분이 더 내릴 채비를 하신다. 이웃분들과 나누는 짧은 인사말은, 멀리 있어도 서로를 다 내다보는 산처럼 살갑기도 하여라. 버스 기사 아저씨는 말없이 문을 열어 두었고, 어르신들은 그만 내려야 하는데 이 고장 민요 같은 그들의 사투리가 자꾸만 운율을 싣는다. 마침내 버스 문이 닫히려는 순간, 쫓기듯 한 사내가 뛰어 내려가는 것이었다. 곧바로 창밖을 보니, 같이 내린 어른들께 한 분, 한 분 절하는 사내의 흙 빛 얼굴이 참으로 순박하다. 그런데 사내의 두 손이 뒷 춤으로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었다. 인사를 마치기 무섭게 등을 돌리면서는 앞으로 감추는 것이 막걸리가 분명했다. 읍내까지 막걸리 사러 나온 것이 못내 창피했던지 걸음이 그리 바쁘면서도 앞에 놓인 팔은 결코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다시 햇살은 버스 안을 들었다 나갔다 하고 있다. 버스가 곡선을 그리자 정류장에 내린 사람들이 사라지고 딱 그 숫자만큼의 집 몇 채가 나타났다. 그 집 몇 채는 줄기를 같이 하는 이 고장 코스모스처럼 서로 어찌나 또 닮아있다. 이때, 창문에 코를 박고 있는 나를 함께 여행 온 친구가 깨운다. 우리 내릴 때가 다 되었단다. 맞아. 나는 이름이 예뻐 여기 밀양에 여행을 와 있지. 버스에 앉아 밀양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보면서 대학가에 두고 온 내 일상이 떠올랐다. ‘내일도 걸을 수 있는 너는 여행이 아니야’ 내가 혹시 이렇게 말했다면 그건 이제 취소해야겠다. 그리고 누구한테라도 여행에 대해 아는 척할 기회가 생기면 일상이 곧 여행이라는 말을, 밀양 사람들 얘기를 곁들여서 해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무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