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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Sep 12. 2015

무제2

 




 머릿속이 복잡한 날에는 옷장 안 아끼는 코트의 주름마저도 근심스럽다. 그러나 힘든 다림질을 감행해 줄 누구도 지금 내 옆에 없기에, 나는 코트를 꺼내 몇 초간 보다가 도로 집어넣는다. 애초에 펼치고자 하는 의지 따위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옷 주름 깊숙이 고여 있는 나를 한 번 보고 마는 것이다.

 때마침 며칠 동안 방치해 두었던 설거지 거리들이 생각났다. 저것만큼은 내가 새 그릇 못지않게 잘 닦아 줄 자신이 있다. ‘레스토랑 알바 경력만 몇 년인데 이 정도 설거지쯤이야.’ 하면서 무심코 하수구 뚜껑을 열었는데, 거기에 음식물 찌꺼기가 가득가득 하다. 내 손엔 이미 고무장갑이 끼워진 상태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날이 있다. 비 맞은 잔디처럼 금방은 물기를 털어 낼 수 없는. 그럴 때는 만만한 하루를 행인 삼아, 나를 밟고 지나가는 행인의 발목에 물기를 묻혀보자. 행인도 잔디를 안타까워 여겨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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